▲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에 미치지 않는다면, 하루에 몇 시간을 초과근무 했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결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법의 허점이 이 같은 해석을 열어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루빨리 법률에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설정해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로시간 ‘역산’ 계산에 교대제 ‘직격탄’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7일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항공기 객실청소업체 대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1주간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할 때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을 초과한 나머지 시간을 연장근로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본지 2023년 12월12일자 2면 “하루 21.5시간 일해도 된다? ‘주 단위 연장근로 계산’ 대법원 첫 판결” 기사 참조>

연장근로시간 계산법에 관한 첫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기존 하급심과 고용노동부의 계산법인 하루 연장근로시간 ‘합산’이 아닌 ‘역산’ 방식으로 법 위반 여부를 따졌다.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에 미달하면 하루 연장근로시간과 무관하다고 해석했다. 대법원 판단을 요약하면 ‘1주 총근로시간-법정근로시간(40시간)=연장근로시간’이 된다.

교대제 근무자는 즉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교대제로 주 4일 각 8시간에 매일 4시간씩 초과근무를 한다면 1주 총근로시간은 32시간(8시간×4일)에 연장근로 16시간(4시간×4일)을 더한 48시간이 돼 일주일의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어서는데도 주 52시간에 미치지 못해 적법하게 되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연속 이틀 일할 경우 하루 21.5시간 근무도 합법화하는 결론까지 가능하다.

유럽식 ‘총량규제’ 국내 환경에는 부적합

본지 첫 보도 이후 대법원의 ‘연장근로시간 계산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입법 불비’가 해소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대법원이 ‘1주간’을 연장근로시간 계산 기준으로 삼은 데에는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정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의 1주간 합계에 관해 정하고 있는 규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현행 근로기준법이 1일 연장근로시간 한도까지 별도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근로기준법 53조1항이다. 해당 조항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50조의 근로시간’은 1주간 근로시간 40시간 초과 금지(50조1항), 하루 근로시간 8시간 초과 금지(50조2항)를 말한다.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에 관한 명문의 규정은 없다. ‘1주간’이라고 통틀어 기간을 설정해 대법원의 계산방식이 나온 이유라고 법조계는 진단한다.

따라서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에 관한 명문의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재까지 이에 관한 입법 논의와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총량규제’가 세계적 추세라 ‘1일 한도’ 논의가 더뎠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제도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24시간 최소 연속 11시간 휴식을 부여해 하루 근로시간 상한을 사실상 13시간(24시간-11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국가들도 ‘1주 단위’로 연장근로를 산정했다.

법 조항에 “하루 연장근로 한도” 신설 필요

하지만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지난해 10월 양대 노총이 실시한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비판과 대안’ 연구에서 “유럽 국가들의 실근로시간 길이는 우리와 차이가 크고, 실근로시간의 단축 없이 무분별하게 총량규제 방식 등을 도입해 근로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경우 이는 결국 장시간 노동을 내버려 두면서 임금 삭감의 결과만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이 유럽국가들보다 긴 만큼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근로기준법 53조1항에 ‘1일 ○시간을 한도로’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해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성우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회 위원장)는 “실제 근로시간이 국제적인 수준까지 줄어들 때까지 하루 연장근로 상한을 정하지 않으면 ‘밤샘노동’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며 “하루 연장근로 한도를 정하지 않은 입법 불비가 이번 판결로 심각하게 드러났으므로, 입법 논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연장근로 상한선을 정한 법 조항을 대법원이 간과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50조2항에는 하루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도 대법원은 1주간 근로시간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했다”며 “기본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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