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원장님, 고맙습니다.” 뜬금없이 이 무슨 말인가 했다. “회사에서 승소했다고 듣고 전화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고, 마침내 원고 노동자들의 승리가 확정된 것이다. 안부를 묻는 말에 그는 멕시코 공장에 파견근무를 하다가 귀국 중에 미국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서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참 법률학교 교안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던 터라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다. 통화를 마치고서 사무실 이 차장에게 물어 보니 조금 전에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판결로 피고 사측의 상고를 기각한 것을 확인했단다. 2019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으니 4년하고 5개월 만인가.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법정에서 승소를 위해서 사측과 공방을 벌였던 일뿐만 아니라, 법정 외에서 노사 간에 협상해서 사건을 정리했던 일까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2. 흔한 통상임금사건이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했어야 함에도 현대트랜시스 주식회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대차·기아·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에 속한 사업장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른 사업장에서는 이미 조합원들이 집단적으로 소송을 하거나 노사합의를 통해서 대표소송을 하고 있다. 조합원을 위한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노조가 뒤늦게 나선 탓이다. 2019년 초 현대트랜시스노동조합 위원장인 그를 포함한 노조간부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했다. 그 당시 기아차사건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현대제철사건에서도 인천지법에서 마찬가지의 판결이 나와서 기아차·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사업장들에서 과거 소급분 지급과 향후 적용에 관해서 노사 간 협상을 진행해 합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트랜시스에서도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요구를 쏟아냈다. 노동조합은 2014년 노사협의회에서 다른 그룹사업장에 대한 판결 결과를 적용하는 취지로 작성한 노사합의서를 내세워 사측에 기아차 등에서처럼 과거 소급분을 지급하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적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과거 소급분 지급은 안 된다고 노사합의서의 취지를 부정했다. 결국 조합원들이 과거 소급분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래서 2019년 7월24일 위원장 백광현 외 1천396명을 원고로 해서 피고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된 각종 법정수당 등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3. 이렇게 그를 포함해서 원고 1천397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는 49명이 전부다. 나머지 원고들은 소를 취하했다. 소송을 제기한 뒤에 노사 간 협상이 진행돼 기아차 등 그룹 사업장과 유사한 수준으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서 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원고들 대부분 소를 취하했는데, 그를 포함한 일부 원고들은 끝까지 법원 판결을 통해서 미지급 임금을 모두 지급받겠다고 남았다. 과거 소급분에 관한 노사합의 수준이 소송을 통해서 지급받게 될 미지급 임금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 49명이 남은 것이지만, 그래서 사건을 수임한 소송대리인으로서 남은 원고들을 계속해서 대리해야 했지만, 사실 원고 소송대리인으로서 일부 원고들만 소송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만큼 사건이 덜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반갑지 않았다. 쟁점은 그대로여서 주장하고 입증해야 할 것이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혹시 2014년 노사협의회에서 한 노사합의의 효력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 노사합의 3년 전인 2011년부터 소급해서 청구한 것이 날아가게 되고, 그러면 노사합의를 수용해서 소 취하를 했어야 했다고 날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이번에 대법원에서 피고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왔을 때도 나는 기쁘고, 안도했다.

4. 재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가 주된 쟁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룹 사업장의 판결 결과에 따르기로 한 노사합의서의 효력이 인정되고, 그것이 과거 소급분을 지급하기로 한 것인지를 두고서 공방이 집중됐다. 사측은 2014년 4월 이 노사합의서에서 “통상임금 관련 그룹사 합의 결과를 준용한다”고 했을 뿐, 그룹사 판결 결과를 소급해 준용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왔다. 이에 따라 2019년 7월 소 제기 3년 이전의 청구는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완성돼 각하돼야 한다고 1심에서부터 상고심 대법원까지 사측은 주장하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사측은 노동조합이 2014년 4월 노사합의 이후에도 계속해서 소급분 지급에 관한 노사합의를 요구해 왔다는 것을 내세워 노사합의서는 그룹사 판결 결과를 준용해서 소급분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노사합의서 문구와 매년 임단협에서 노조 요구만 보면 사측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어 혹시 법원이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노사합의를 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데 관여했던 백 위원장 등 노조간부들에게 연락해서 묻고 자료를 찾아 달라고, 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괴롭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피고는 시효완성 전에 원고들에게 미지급 법정수당에 관한 권리행사나 시효중단 조치를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했다거나 시효완성 후에 피고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며 사측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법원의 판결문을 읽게 됐다. 또한 대법원에서 승리했다는 원고 전화까지 받게 됐다.

5. 대법원 판결이 나와 전화연락을 받았던 21일 저녁, 우리 사무실에서 법률학교 강의를 했다. 이날 주제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이었다. 단체교섭 대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우리 노동조합이 교섭하고 노사합의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근래 노사합의 중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사합의 사례를 들어서 하고 싶었는데, 다 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은 생각했다가 다른 걸 설명하느라 놓치기도 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노조들이 조합원 권리를 두고서 사용자와 협상하는 것에 관해서다. 현대트랜시스노조를 포함해서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가 이미 조합원에게 귀속된 권리를 두고서 사용자가 협상해서 일정 수준을 지급받는 노사합의를 한다. 통상임금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조합원의 권리를 두고서 그렇게 해 왔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새로운 권리를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이것이 노조의 일인 것이지 이미 조합원의 권리로 된 것을 사용자와 협상해서 양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당연한 노조의 일이라고 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헌법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자가 단결해서 단체교섭할 기본권을 보장했다(33조1항). 이 헌법 규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합원의 권리로 확보된 근로조건을 사용자에 양보하기 위해 노조로 단결해서 단체교섭할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합원의 권리를 사용자가 이행하지 않아서 그 이행을 받고자 협상하고 조합원의 권리를 양보했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조의 존재이유에 부합한다고, 노조의 일이라고 인정되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노조간부를 위한 법률학교에서 노동법 교육 ‘단체교섭’편에서 던져 왔던 질문이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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