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굳이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개념은 한 번쯤 듣게 된다. 이미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수요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일정 기간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수요량이란 소비자가 구매하고자 하는 양이다. 반면 공급은 수요와 대칭적인 관계로 생산자가 각 가격수준에 대응해 공급할 의사가 있는 공급량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가격이 낮을수록 수요가 많고, 공급자는 가격이 비쌀수록 많이 공급한다. 이때 시장 수요량과 시장 공급량을 일치시키는 가격을 균형가격, 거래량을 균형거래량이라 한다. 공급자가 팔고자 하는 가격과 수요자가 사고자 하는 가격이 일치해야 거래가 성립되고, 시장에 변화가 없다면 시장에서 형성된 균형가격은 지속된다.

이러한 균형가격은 수요량과 공급량의 변동에 따라 움직인다.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많으면 그만큼 해당 상품의 가치도 높아지므로 균형가격은 높아진다. 반대로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늘어나면 해당 상품의 가치가 낮아지므로 균형가격은 낮아진다. 또한 대체 또는 보완관계에 있는 관련 재화가 많을수록 해당 재화의 가격은 낮아지게 된다. 아주 당연한 수요·공급의 원리는 노동시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의사, 변호사, 약사, 변리사 등 증원확대에 대해 관련 업계가 격렬히 반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서비스의 질적 하락 같은 이유도 포함되겠지만 노동시장 내 공급량이 늘어나 균형가격이 낮아진다는 점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여성이 집중된 특정 직종에 대한 과잉공급 문제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여성이 집중된 직종 중 국가자격증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일자리는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를 들 수 있다. 두 직종의 합격률은 90% 중후반에 달할 정도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이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다. 내일배움카드 등의 지원 속에 고용단절여성이나 중장년여성이 재취업 도구로 활용됐다. 게다가 정원이 제한되지도 않으므로 시장에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올해 보육교사 국가자격증 소지자만 157만명에 달한다. 요양보호사 역시도 12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은 3만개, 재가장기요양기관은 1만4천개(2022년 기준 보건복지부 집계)라는 수치를 보면 이들이 얼마나 과잉공급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여성의 고용단절을 해소하고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은 양성해 노동시장에 공급하였지만, 과잉공급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노동시장 내 과잉공급은 균형가격, 즉 여성노동자 임금을 하락하게 만들고 대체인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고용도 불안하게 만든다. 물론 최저임금과 수가 등을 통해 기준선 아래로의 하락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력의 지속적 공급은 임금수준이 하방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결국 하방의 저지선이 되는 최저임금 인근에서 임금수준이 결정되거나 최저시급을 크게 넘도록 수가를 조정하더라도 과도한 인력으로 인해 일거리를 구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나마 처우가 낫다는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조차 인건비 기준에 따르면 1호봉 세전 209만원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이 더해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요양보호사 중 방문요양은 시간당 1만4천원 수준이지만 월평균 임금은 100만원 초중반에 머무른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요양보호사와 보육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정부 주도하에 만들어진 수많은 여성일자리는 수요·공급 메커니즘에 따라 질 낮은 일자리로 전락했다. 한정된 예산과 제약으로 양(quantity)과 질(quality)이라는 상충관계 중 질보다 양에 집중한 결과다. 양적인 성장에는 질적 향상이 동반돼야 한다. 무분별한 확대는 단기적으로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제활동참여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결국 취약한 여성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에 그칠 우려가 있다. 시장에 필요한 수준의 적정인력을 예측하고 그게 맞는 공급계획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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