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인구와 산업변화, 무엇보다 낮아진 출산율을 만회하겠다며 이민청 논의를 꺼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고용허가제의 규제를 강화하고 양과 범위를 확대하는 계획만 내놓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재와 앞으로 필요한 변화를 짚어봤다. <편집자>

고용이 어려운 한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저숙련·단기순환 중점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임금·고용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는 만 15세 이상 이민자 가운데 91일 이상 한국에 거주한 상주인구를 대상으로 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임금 수준은 월평균 200만~300만원 미만 44만2천명, 300만원 이상 31만3천명이다. 고용허가제(E-9·H-2) 대상 이주노동자를 살펴보면 △200만~300만원 미만 21만2천명 △300만원 이상 10만7천명 △100만~200만원 미만 1만2천명 △100만원 이하 1천명 순이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는 연봉이 4천만원을 못 넘는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내국인 현실은 똑같이 열악

이들과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조선업 하청노동자 처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정부가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임금을 조사한 결과 연평균 3천~3천500만원에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정규직 평균 연봉은 삼성중공업 7천500만원, 현대중공업 7천만원, 대우조선해양 6천700만원이다. 2배가량 차이가 난다.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조선업에 밀어 넣은 이주노동자 대부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금속노조가 8월 작성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업체들이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저임금을 유지하는 실태가 드러난다. 특히 조사 대상에 포함된 숙련기능인력(E-7-4) 비자 입국자는 저숙련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전문인력 비자다. 이들은 규정상 국민총소득의 70%(246만1천840원)~80%(281만3천530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에 턱걸이하고 있다. “국제적 취업사기”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김철효 국립경상대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임금상승과 노동조건 향상을 통한 내국인 노동자 일자리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저생산성 업종에 저임금 이주노동자를 계속 공급함으로써 중소기업, 농어업이 이주노동자 노동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체계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연구는 이런 배경을 일부 설명한다. 통상 일자리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뒤따른다. 그 이후 늘어난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임금인상 요구가 강화된다. 실제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고용위축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고용이 늘어났고, 임금인상 요구도 덩달아 확대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동공급 확대에도 임금인상 압력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4월 내놓은 ‘주요국 노동수급 차이가 임금상승 압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4분기 이미 경제활동인구가 2020년 2월보다 0.4%포인트(18만명) 증가했다. 이는 2020년 2월과 비교해 여전히 1%포인트 하회하는 미국보다 빠른 회복세다. 노동공급이 빠르게 이뤄지면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임금상승 압력이 덜하다. 한국은행이 임금상승률과 기업의 구인성공률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구인 성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임금 상승률은 0.2%포인트 하락했다.

▲ 이주노동자 유입의 상징적인 업종이 된 조선산업은 임금과 고용조건이 열악한 상태다. 지난해 하청노동자 파업을 겪었지만 이후 대책은 또다시 이주노동자 확대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이주노동자 유입의 상징적인 업종이 된 조선산업은 임금과 고용조건이 열악한 상태다. 지난해 하청노동자 파업을 겪었지만 이후 대책은 또다시 이주노동자 확대다.<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43만명 방치하고 신규유입 무슨 소용

이주노동자를 빈 일자리를 메우는 용병으로 취급하는 정부 정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할 우려가 크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현재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경로 중 하나가 구직신청 기한 내 사업장을 구하지 못해 체류자격을 유지 못하는 사례”라며 “고용허가제를 확대하고 정부가 지난해 12월 고용허가제를 개편하겠다며 사업장 변경 범위를 광역단위로 더욱 옥죄면 기한 내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 규모는 법무부 통계를 기준으로 43만명이다. 정부가 내년 확대하겠다는 고용허가제 쿼터 16만5천명의 2.5배가 넘는다. 이주노동자를 신규 도입하려는 계획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 게 순서라는 지적이다. 최서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초미의 관심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규모를 줄이는 것인데 (사업장 변경 제한 같은) 제도를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영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있다”며 “정부는 열악한 한계기업 등에 이주노동자를 유입시키려고 사업장 변경 제한을 비롯해 제도를 더욱 경직시키는 양상이라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출생 대책으로 ‘이민청’ 내세우는 정부

고용허가제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만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는 결국 정책변화 요구나 다름없다. 고용허가제로 대표되는 인력수입 정책에서 인구와 산업구조 변화에 조응하는 이민정책으로의 방향성을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다.

정부도 계획은 있다.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이민청 설립이 포함돼 있다. 국회에는 법무부 외청으로 이민청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두 건 발의됐다. 그렇지만 외피만 이민청일 뿐 인력수입 정책의 선회는 보이지 않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 7월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연사로 참석해 “인구 감소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며 출산율 회복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출입국 이민정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민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국익의 관점에서 출입국·이민정책을 추진할 컨트롤타워”라고 이민청을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민청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저임금으로 내국인이 떠난 빈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는 것처럼 저출생으로 가시화된 지방소멸 위기를 이주민으로 때우겠다는 의도다. 그러면서 이주민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 정치를 멈추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장관 재임 시절인 지난달 22일 국회 지방소멸 세미나에 참석해 “합법 체류를 늘리되 불법 체류자(이주노동자)는 확실히 적발해 내쫓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선업 일손 부족을 위해 외국인 투입을 늘리고 있는데 거기는 어차피 젊은이들이 가지 않는다”며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자동차 같은 부분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늘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주민을 도구화하는 이런 발언은 포용사회와 거리가 멀다.

학계는 이런 인력수입 정책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한숙 소장은 “이주노동자를 값싸게 사용하면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늘어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며 유입을 더 늘리는 것을 반복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단속하는 정책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정우 지역이민정책개발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정책은 산업 중심으로 어느 산업에 얼마나 필요하니 어떻게 얼마나 들여오겠다는 수준에 그친다”며 “인구구조와 산업전환 시기에 정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수용가능한 이민을 바탕으로 지역기반의 이민행정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경제생활 영위할 인프라·내국인 수용성 높일 정책 절실

인력수입 정책으로서의 고용허가제를 폐기하고 이민정책으로 선회하려면 짚을 대목이 많다. 당장 호구지책 마련도 준비가 필요하다. 최서리 연구위원은 “고용허가제 같은 제도는 고용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는데 당장 E-7 비자만 해도 취업 관련 정보를 알기 어려워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최근에 확대하는 유학생도 졸업 이후 취업경로가 마땅찮은 등 이주민을 위한 생활·경제적 제도와 인프라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출입국을 제한하는 통제수단으로서의 체류자격(비자) 체계 점검도 요구된다. 석하림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전 연구원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보는 정체성이 형성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용허가제가 노동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교체 순환(단기 체류), 사업장 이동 제한, 가족 동반 금지를 고수하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경제적 이민자가 아닌 생산요소로 인식돼 사회통합의 대상에서 배제됐다”며 “기능적 필요에 따른 법적인 체류자격 구분이 이주노동자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국내 체류자격은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36개로 분류된다. 세부적으로는 200여개 이상이다. 다양한 이주 유형에 따라 새 유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달하면서 되레 이주에 장애물이 된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들은 체류자격을 간소화하는 추세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는 체류 자격 변경 시 비자 승인시까지 합법 체류를 보장하는 ‘브릿징 비자’를 도입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수용성 증가가 필수적이다. 최서리 연구위원은 “너무나도 절실한 과제”라며 “내국인 대상 교육이나 축제 같은 방식의 동화정책도 펴고 있지만 생활과 유리된 면이 커 차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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