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노무법인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12월11일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비상상황 대비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추락·끼임 등 산업재해, 사업장 화재, 노동자의 심정지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초 발견자나 주변 노동자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상상황에 미리 대비하라는 것이다. 비상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 방법 중 하나로 노동부는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참조해 사업장에 맞는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상상황 3대 원칙으로 △노동자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 사항으로 둔다 △예상 가능한 비상상황에 대해 대책을 마련한다 △실제 이행가능한 대책이 되도록 준비한다를 제시했다.

지난 11월9일 대법원(2018다288662 판결)은 금속노조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지회장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 등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지회장 소속 사업장 인근 공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사고를 이유로 지회장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것이 정당한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가 업무로 인한 사망·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이와 ·같은 사유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노동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판단 근거로 황화수소가 가지는 위험성, 대피가 이뤄진 범위, 근로감독관의 권유 등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했던 상황에 대해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노동부는 ‘사업장 비상상황 대비 가이드라인’을 통해 ‘평상시 비상상황 단계별 대비’로 ①대응체계 구축(경보시스템구축, 긴급전화기 등 신고수단 마련) ②비상상황 대응 매뉴얼 작성(발생가능한 비상상황을 고려, 작업중지, 위험요인 제거 등 긴급조치 마련, 구호조치 및 기본적 응급조치 계획 수립, 대피절차와 비상대피로 지정, 추가 피해방지를 위한 조치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매뉴얼 이행 점검 관련 조항 포함) ③훈련 및 교육 실시(역할 분담을 동반한 시나리오 훈련, 응급처치, 대비절차 교육)를 강조했다. ‘사고 발생시 비상상황 대응’으로는 ①초기 대응(즉시 119신고, 응급처치 및 경보장치 작동), ②사업장 대응조치(해당 현장 및 피해 확산이 우려되는 현장은 즉시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및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 ③구호조치 및 피해확산 방지(보호구를 갖춘 구조반의 투입, 추가 응급처치 진행, 119 구급대 도착시(환자 위치 안내, 환자의 상세한 상태 설명, 사고상황 설명),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방송, 관련 취약 기관에 비상연락 및 상황 보고, 피해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 실행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작업중지’란 표현을 2차례 언급했다. 산업안전보건법 51조(사업주의 작업중지), 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를 구분하고 있다. 노동부가 언급한 작업중지는 사업주의 작업중지 권한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을 갖추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콘티넨탈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서 “노동자가 업무로 사망,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 기준, 판단 주체와 관련된 논란은 각각의 비상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사업장에서 비상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작성하고 교육·훈련하는 과정에서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을 노동자가 할 수 있다는 것, 긴급을 요하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노동부는 ‘사업장 비상상황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사업장에서 형식적으로 매뉴얼을 작성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 스스로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기본권이다. 노동자가 판단 주체이고 작업중지권 행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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