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노조 회의실에서 근로시간 면제제도 근로감독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제도 남용을 명분으로 개별 노사 단체협약에 개입해 시정 또는 삭제 등을 지시한다는 비판이다.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시정명령이 아니라 행정지도에 속하는 시정지시를 해 법률 다툼도 피하는 편법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고용노동부의 타임오프 실태조사와 관련 시정지시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설명했다.

타임오프 제도는 근로시간을 면제해 노조 간부나 임원이 전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개념이다. 노조 규모에 따라 일정 구간을 정하고, 해당 구간에 해당하는 타임오프 상한을 두고 있다. 조합원 3천~4천999명 최대 1만4천시간, 5천명~9천999명 최대 2만2천시간 등이다. 2010년 법률 개정을 통해 도입한 것으로, 이전에는 노사합의에 의한 노조 전임자 규모를 정하고 있는 방식에서 바꾼 것이다.

ILO “타임오프 한도 부과는 노사 자율 결정 원칙 반해”

그러나 이처럼 상한을 두는 방식은 국제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비준해 시행된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과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 등은 노사 자치의 원칙에 따라 노조 전임자의 급여지급을 법적 개입 없이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협약 이행을 평가하는 ILO 전문가위원회는 2021년 우리나라에 타임오프 한도를 부과한 것은 노사의 자율적 결정과 자율규제 원칙에 반한다는 권고를 보내기도 했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10년 개정 당시 타임오프 규제를 통해 사용자와 정부가 노조활동에 개입하고 ‘허가’하는 방식이 우려된다고 했는데 현실이 됐다”며 “가장 좋은 대안은 국제법과 국제적 상식에 따라 타임오프와 관련한 규정을 아예 삭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타임오프 제도를 노조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양상이다. 지난 5월30일 노동부가 1천명 이상 사업장 가운데 노조가 있는 510곳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타임오프와 노조 운영비 지원현황 실태조사의 ‘쓰임’이 그렇다.

이 실태조사는 조사 취지와 방식이 모두 꼼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해당 실태조사는 법 위반 처벌보다 법령 준수를 목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규정에도 사용자만을 조사 대상으로 진행해 노조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진행됐다”며 “실태조사 결과 발표 뒤 타임오프 제도 한도 초과나 노조활동에 대한 사용자 지원 결과만을 바탕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예단, 수사에 준하는 근로감독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설명한 사례만을 토대로 노조에 부당한 특혜를 줬다는 명분을 쌓아 단체협약을 낱낱이 뒤졌다는 이야기다.

사용자쪽, 근로감독 빌미로 전임 해제·단협 수정 요구

감독 방식도 강압적이었다. 박 국장은 “사용자의 노조파괴 같은 극히 심각한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수사기법을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수사기법이란 2박3일 상주 근로감독과 포렌식 장비 동원한 압수수색 등이다. 이는 사용자가 △설립 추진 중인 노조간부를 사유 없이 해고하거나 △유사 사유에도 노조 활동자만 해고하고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등 극히 악의적이고 노조를 파괴할 목적으로 행한 부당노동행위를 수사하기 위한 수사기법으로, 2017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노조 무력화 및 부당개입 관련 실태와 개선 권고를 수용한 내용이다. 이를 활용해 노사 자치의 영역인 타임오프 제도 운용 실태를 점검한 것은 과잉행정이란 비판이다.

이는 사용자의 단협 이행 거부 또는 개정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근로감독 결과를 지난달 중순께부터 사용자에게 시정지시를 내리면서 사용자쪽이 관련 단협을 삭제하거나, 전임자 해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박선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현대모비스광주지회장은 “사용자쪽이 100쪽 넘는 단협 내용을 일일이 노동부에 질의하면서 노동부가 허가한 타임오프를 정리해 노조에 요구한다”며 “노동부는 시정지시 뒤에 숨어 노사 간 갈등을 부추기고 손 안 대고 코 풀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활동 위축하는데 법률구제도 어려운 ‘꼼수’

시정지시 유형은 크게 △연차휴가 사용 △근무시간 중 유급조합 활동 △특별수당 지급 △사용절차, 대상 업무 △타임오프 한도 및 인원 등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불법 여부가 뚜렷하지도 않고 개별 사건을 다퉜을 때 법원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위법성을 사용자 조사와 노동부 감독만으로 판단한 것이다.

박준성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부는 매우 협소하고 자의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사업주 대상 민사소송에 참여한 시간이나 집회 참석, 피케팅 같은 시간에 타임오프를 적용한 것을 시정지시하고 쟁의행위 준비도 타임오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며 “실제 노사 간 교섭과정 같은 현실 노사 관계를 외면하고 기업별 노조만 상정한 타임오프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다양한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기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노동부와 사용자가 ‘허락’한 활동만 노조활동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이런 시정지시에 대해 노조가 대응하기도 어렵다. 행정처분이라 행정소송이 가능한 시정명령과 달리 시정지시는 행정지도라 대외적 구속력이 없어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따르지 않더라도 시정지시의 대상은 사용자라 노조가 어떠한 법적 구제의 주체도 될 수 없는 구조다.

사용자쪽은 시정지시의 내용이 사용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이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노동부는 법률적 근거도 없이 시정지시를 이행했다는 이행지시서를 사업장 내에 게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배형찬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사용자가 노동부의 근로감독을 기회로 전임 해제를 통보하거나 공공기관은 노조 간부 내부감사를 진행해 활동을 위축하고 있다”며 “위법성이 불분명함에도 시정지시라는 편법을 동원해 다툴 수도 없다”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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