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앞으로 고유번호(사업자등록번호)가 없는 산별노조·초기업노조의 분회·지회 등이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대표자의 주민등록번호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할 수도 있다. 고유번호가 없어서 소득공제 대상인 조합비(기부금) 영수증을 노조 대표자 명의로 발행해 온 노조가 해당되는데, 그런 노조들의 규모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이달 22일까지다.

개정안의 뼈대는 별지 33호의5 서식 ‘노동조합 회계공시 결과 확인서’ 신설이다. 해당 서식은 노동부 장관이 소득공제 ‘혜택’을 줄 노조를 분간하는 데 사용되는 양식으로, 노동부 장관이 국세청장에 제출한다. 담아야 할 내용에는 노조 정기현황 보고 과정에서 의무 기재 내용이 아니던, 즉 노동부가 수집하지 않던 총연합단체 명칭·연합단체 명칭·소속된 단위노조 명칭·사업자등록(고유)번호 등도 포함됐다.

노조 회계공시 강제 뒤 각종 정보 취합

노조회계 관련 이슈는 지난해 말 노동부가 노조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노동계는 “노조 전체를 비리 온상으로 몰려는 악의적 선동”이라며 회계장부 제출을 거부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정부가 노조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권한이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노동계 반발에 부딪히자 당정은 지난 5월 1천명 이상 노조의 회계공시와 조합비 소득공제를 연계하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시행령 개정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카드로 꺼내 들었다.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시기를 3개월 앞당겨 10월 시행했다. 총연합단체인 양대 노총이 회계공시를 거부하면 산하 조직들은 1천명 이하라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는 ‘연좌제’ 구조도 만들었다. 조합원을 볼모로 잡은 탓에 부담을 느낀 양대 노총은 10월 정부의 회계 공시 요구를 받아들였다.

개정 시행령이 시행되자 정부는 법률 근거가 명확지 않은 노조의 각종 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조직이 실재하는지 파악하겠다며 노조 고유번호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이 국세청장에 제출해야 하는 서식에 필요한 정보로, 고유번호가 등록되지 않은 노조 중 노조 대표자 명의로 주민등록번호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는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노조 고유번호나 주민등록번호 제출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한 노동부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동부는 산별노조 하부조직의 대표자·소재지·조합원수 제출 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의 노조법 시행규칙 개정 취지에 대해 “개인정보인 노조 임원 주민등록번호를 정보수집 대상에서 삭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기재부의 소득세법 시행규칙 개정에는 산별노조 하부조직 대표자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졸속 시행, 행정 혼선도

노조에 대한 정부의 행정개입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부뿐 아니라 지방청·지청·지자체까지 노동단체 카드 정보를 다 취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행정기관에서 하는 노조 관련 업무는 집무규정을 보면 (노사 간) 교섭촉진·노조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한 행정은 없고, 노조법 위반을 검토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행정 전반의 방향이 노동 통제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소득세법 시행령을 무리하게 앞당기느라 행정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노동부 장관이 국세청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고유번호가 없는 산별노조 A분회가 산별노조 고유번호만 적으면 되는지, 대표자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야 하는지에 노동부와 기재부 답이 다르다. 노동부쪽은 회계처리를 산별노조에서 했다면 산별노조 고유번호를 작성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기재부 소득세제과 관계자는 “저희도 처음 서식을 만드는 것이라서 모든 케이스(경우)에 완벽한 답을 저희 안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래서 입법예고를 하고 의견을 받는 것이니,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면 타당성을 검토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노동부쪽 설명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들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부에서 실적 쌓기용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준비가 되지 않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몇 번씩 개정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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