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푸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2023년이 어느덧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2023년엔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한국 사회의 노동권을 둘러싼 일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중에서 지난주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은 당연한 것을 인정받지 못한, 앞으로의 과제를 남겨 준 사건이기에 많은 비판과 논평 속에 한마디를 더 얹어 두고자 한다.

대법원은 지난 7일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5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이었으나 기존 법률로도 원청에게 죄를 물을 수 있었고, 물었어야 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서부발전은 하청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업무지시와 보고를 받았고, 많은 안전사고를 보고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의 죽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호명되지 못한 많은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도, 여당은 개선방안 마련 대신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를 계속 언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회는 8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재표결하였는데, 총투표수 291표 중 찬성 175표로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동자의 죽음 이후 20년간 계속돼 온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김용균 노동자 사건처럼 하청업체 뒤에 숨은 원청에게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사용자성 문제를 20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노동자가 실제 사용자에게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노동 3권이 보장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노동자 개개인에게 개별 책임 이상의 손해배상·가압류는 제한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노력한 많은 분들의 노력에도 이를 확인받는 길이 아직 멀기만 하다.

내 직업이 변호사지만 모든 사회적 논쟁의 종착지가 법 또는 법원 판결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토론의 결과물을 반영하는 것이 법이고, 법이 선도해서 사회를 바꿔 나가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법이 개정된 다음에도 시행령과 판결 속에서 법이 본래의 의도와 달리 변형되고 해석되는 사례가 많다.

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 원청 CJ대한통운이 하청 택배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오랜 시간 당사자들과 연대해 온 사회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였을 것이다. 일하다 죽지 않도록, 진짜 사장이 책임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 같이 요구한다면 법개정과 바람직한 판결을 맞이할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이르지만 총선을 앞두고 국회만을 바라보는 2024년이 되지 않기를, 거리와 사업장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한 해를 보내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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