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용노동부가 위험성평가 의무화를 위해 도입하기로 했던 처벌조항을 연내에 발의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지난 5일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노동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제재규정 신설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령 정비추진반 운영을 통해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진행했고, 추가적인 의견수렴과 논의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발표 이후 노동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제시했고 그 중심에는 위험성평가가 있었다. 감독과 처벌 중심의 예방정책의 한계를 각 사업장이 위험성평가를 통해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개선함으로써 극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에 따라 위험성평가 절차와 방식도 간소화하도록 고시를 변경했고, 건설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상시위험성평가라는 틀도 제시했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위험성평가를 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만큼은 명확해 보였지만 결국 노동부는 또 한 번 후퇴를 결정했다.

노동부는 위험성평가 미이행에 대한 제재방안이 ‘전면 무산된 것은 아니며 논의를 이어 간다’는 입장이지만, 작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이 단순한 연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이 위험성평가라는 것은 노동부 스스로 강조했던 바이지만 그들이 애써 말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정책들이 힘을 갖고 현장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동력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노동부 관계자는 처벌규정을 고민하는 이유가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예상보다 빨리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을 개정하지도 않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이제는 엉뚱한 고민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고민을 해야할 때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느냐 마느냐,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느냐 마느냐의 엉뚱한 고민은 이제 그만하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아직 준비가 부족하니 봐주고, 위험성평가는 준비를 잘하고 있으니 봐주자니, 도대체 처벌은 언제 하는 건지 궁금한 건 둘째치고, 이게 한 국가의 산재예방 정책을 논하는 장에서 쟁점이 될만한 말인가.

오히려 지금은 정부 차원의 준비 수준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어떻게 내실화할 것인가? 그 결과 쏟아져 나올 유해위험요인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기존의 지원방식과 안전보건관리 시장의 질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문제들을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제 고민다운 고민을 하자.

로드맵이든 위험성평가든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부족하나마 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재계로부터 온갖 공격을 받고 있고 정부가 앞장서 5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마저 유예하려는 지금, 노동부는 자신의 정책이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핵심과제라고 했던 위험성평가의 후퇴 선언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번주는 김용균 노동자의 5주기 추모주간이다. 김용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산재노동자의 이름일 것이다. ‘김용균법’이라 불렸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그리고 전면 적용을 앞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5년간 그의 이름은 또 다른 의미의 동력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작동해 왔다. 그들의 노력이 아직 결실을 맺지도 못한 여기서 좌초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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