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법률원에 들어와 8년 넘는 기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노동조합을 자문하며 때로는 사건을 진행하며 여러 통로로 만나 왔다. 그 과정에서 개인으로 혹은 노동조합과 집단으로 만나기도 했다. 가능하면 법률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나의 의견이 사용자 앞에서 쓸 무기가 된다면 했다. 다만 법률 규정에 얽매여 투쟁이 뒤로 밀리는 일은 늘 경계했다.

올해 초로 기억한다.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4명이 한꺼번에 보직해임된 사건을 맡게 됐다. 당시 노조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은 내내 귀에 맴돌았다. 보직해임된 이유는 평가 점수가 낮다거나 근무 장소가 변경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노조는 구체적인 보직해임 사유도 파악하지 못해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이기는 싸움이 출발부터 삐걱거린 것이다. 노동조합에 평가 자료와 근무 장소가 변경돼 보직해임된 과거 사례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불가능하단다.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어느 경우건 내부 평가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도 나는 이거 달라 저거 찾아봐 달라 반복해서 요구했다. 그 자료 없으면 이기지 못한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위원회를 통해 평가 자료는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최근 노동위원회가 사용자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도록 한 규칙개정을 활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후 사건 진행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사용자가 그토록 평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가능했다. 문제는 사측의 노골적인 방해로부터 촉발했다. 심문회의 날짜가 잡히고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용자가 심문회의를 연기하자고 노동조합을 압박했다. 노조를 통해 연기하지 않으면 기관평가 준비에 소홀해져 그 불이익을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사용자는 심문회의 위원 구성에 불만이었고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심지어 조합원에게 우호적으로 확인서를 써 준 위탁업체를 상대로 계약을 해지할 것처럼 엄포를 놓았다. 노동조합은 결국 연기를 선택했고, 나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조합의 유연함에 불만이 가득했다.

다행히 한차례 연기된 지방노동위원회 심문회의에서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밖의 전보나 부당노동행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여하튼 패한 싸움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에게 사용자가 중앙노동위원회 가지 못하도록 압박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중노위에 갈 생각이 없었다. 가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용자는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다. 우리도 이에 이끌려 기각된 부분에 대해 중노위로 향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사용자가 주도하여 올라간 중노위에서 일부 우리 주장과 그 결론을 같이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가 재심을 신청한 보직해임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같이 하면서도 전보조치에 대해서는 우리 주장을 받아들여 오히려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쁨도 있었지만 전보는 안 될 거라 지레 포기한 나에게 도리어 화가 나기도 했다.

활동 기간이 늘어 갈수록 화도 같이 늘어 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대부분 그 화가 나에게 향하지 않고 밖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물론 법률원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한 나름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이 조금 더 법에 의존하지 않고 가열하게 투쟁으로 돌파했으면. 노동위원회가 조금 더 노동자 입장에서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했으면. 바람은 끝이 없고 실패의 원인은 결국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어쩌면 실력 향상의 기회를 남 탓으로 돌리며 뒷전으로 밀어 놓는 것일 수 있다.

새삼 지금까지 나를 만나며 묵묵히 화를 받아 주신 노조에 감사드리고 싶다. 이기는 싸움으로 결론 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사용자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그래서 중노위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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