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지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삶)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자살사망자는 1만2천906명으로 전년보다 3.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연령표준화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명당)을 비교하면 한국은 22.6명으로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 자살률 10.6명의 두 배가 넘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자살사망자는 1만2천727명이다. 경찰청 통계는 경찰의 변사사건 조사에 따른 것으로 군인 자살은 제외돼 통계청 자료와 차이가 난다. 경찰조사 결과에 따른 주된 자살 사유는 ‘정신적, 정신과적 문제’ 39%, ‘경제생활 문제’ 23%, ‘육체적 질병’ 18%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는 3%(404명)다.

필자는 얼마전 2022년 자살 노동재해 통계 및 자살 산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를 분석하는 작업에 참여했는데, 2022년 자살 산재 판정(승인, 불승인 모두 포함)은 97건이었고,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원 자살 노동재해 판정까지 합쳐도 147건이었다. 얼마나 많은 업무상 사유로 인한 자살이 재해보상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묻히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는 당해 사망자수이고, 노동재해 통계는 당해 판정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최근 5년간 경찰청 통계상 ‘업무상 문제로 인한 자살’은 평균 495명이다. 하지만 자살 노동재해 판정은 131건에 그친다. 업무상 자살 사건의 26%만 노동재해 보상 신청을 한 셈이다. 그중 노동재해로 인정을 받은 것은 5년 평균 75건에 불과하다. 신청 131건 대비 승인율은 57%, 경찰청 통계를 기준으로 확대하면(495명) 업무상 자살 인정률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자살을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만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즉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와 이러한 ‘정신적 이상 상태’로 인한 ‘자살’이라는 이중의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도 자살 전의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 또는 “정신적 이상상태”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망인이 유서에 유족들에게 자살 이후의 대응에 대해 당부를 한 경우 등에는 “정신적 이상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상 사유로 자살을 결의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신적 이상상태”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구심이 든다.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사회평균인 기준’이 아닌 ‘당사자 기준’으로 봐야 하며,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며, 재해조사 지침에도 명시돼 있다. 법원은 정신질환에서도 “개인적인 취약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에 겹쳐서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했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1.6.9. 선고 2011두3944) ”고 판시했다. 그러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기왕력”이 있는 경우나 “업무상 스트레스가 해당 직무에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을 넘지 않는 경우” 업무관련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자살 산재 통계를 보면 2022년 판정은 신청 97건, 승인 50건으로 승인율은 52%였다. 최근 5년간 승인율을 보면 2018년 80%, 2019년 65%, 2020년 70%에서 2021년 56%, 2022년은 52%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한편 최근 5년 동안 자살 산재 불승인건에 대한 소송에서 공단의 패소율은 46%로 높은 편이다. 법원의 기준이 실제 재해조사와 질판위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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