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일명 노란봉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공포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다만 이날 임시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모두발언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교섭 당사자와 파업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원칙에 예외를 둠으로써 건강한 노사관계를 크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윤석열 정권이 노동문제에 보여준 모습으로 보면 노란봉투법을 거부할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 그래서 나는 놀라지 않았지만 아무 느낌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나고, 유감스럽다.

노란봉투법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야당 주도로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왔으니 이제 노란봉투법은 국회 재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 112석의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재의결을 기대할 수가 없다. 이렇게 노란봉투법은 국회 재의결절차에서 부결돼 폐기될 운명이다.

경총,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 이 나라 경제 6단체는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폐기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분노가 치민다. 대한민국에서 권력과 자본에 의해 노란봉투법이 짓밟혀 폐기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단체교섭 등 노조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좌절하고 사용자의 수십,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의 위협 속에 노조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2.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법률을 말한다. 윤석열 정권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서 노란봉투법이 “교섭 당사자와 파업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한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조법 2조2호 후단을 신설하는 걸 두고서 하는 말이다. 노조법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활동하는 걸 규율하는 법률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근로조건 향상 등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서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상대방은 그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만을 상대로 단체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고용노동부의 노동행정을 비롯해서 노동현장에서 운영해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불법으로 취급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를 상대로만 하청노동자들은 단체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며 원청을 상대로 해서 할 수 없다고 불법의 딱지를 붙인 것이다. 이로 인해서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불법 범죄자로 규정돼 업무방해죄와 노조법 위반 등으로 형사처벌 받고,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받았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 사업주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원청 사업주가 도급계약에서 정하는 인건비로 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를 상대로 해서는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수가 없어서 실제 자신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단체교섭하고 쟁의행위하는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불법과 범죄로 규정된다. 대한민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조활동을 통해 자신의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길이 막혔던 것이다. 이렇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길을 막고서 이 나라에서는 원청 정규직과의 임금 등 근로조건 차이를 내세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정책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표했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임금 등 근로조건은 원청 정규직에 비해 격차가 커지기만 했다. 사실 기껏해서 마련했다는 정책이라고 해봐야 구체적으로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원청 정규직 수준으로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 정규직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삭감해서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용자 자본의 눈으로는 볼 때는 그럴듯할 뿐, 노동자에게는 황당한 것이다. 이런 정책이 진보든, 보수든 정권의 색깔을 가리지 않고 계속됐다. 이런 나라라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스스로 교섭하고 쟁의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길을 막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원청 정규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노동정책을 마련해 추진하지 않는 나라여서 오늘도 사용자 자본은 “노란봉투법은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며 기고만장일 게다.

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한 것이 노란봉투법에서 노조법 3조2항의 신설이다. 파업투쟁은 노동자들이 집단행위이다. 불법파업이라면 공동불법행위여서 그 파업행위가 가담자들이 그 손해 전부에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진정연대책임의 법리가 적용될 수가 있다. 이러한 법리로 쌍용차투쟁, 현대차 사내하청투쟁 등에서 사용자가 조합원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주체·목적·시기와 절차·수단과 방법 등 우리 노조법은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규제하는 규정들로 채워져 있다. 한번 노조법 1조부터 부칙까지 100여 개의 조문을 읽어보라. 바로 이렇게 내가 말한 이유를 납득할 것이다. 우리 노조법은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보장하는 법률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예외적으로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으로 규정한 노조법상 규제에 따른 경우에 허용하는 법률이라고 말 수 있다. 이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한한 것도 아니고, 이 나라 노동자 모두의 쟁의행위가 그러하다. 이렇게 해서 웬만해서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는 불법이고 범죄로 되는 것인데, 그래서 노란봉투법을 통해서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라도 각 배상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서 완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서 이 나라에서 권력은 “민사상 손해배상 원칙에 예외를 둠으로써 건강한 노사관계를 크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 불편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거부한다. 사용자 자본은 “노란봉투법은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고 공동성명을 내니 어찌하겠는가. 분노할 수밖에.

3.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법은 임금체불을 형사 범죄행위로 다루고 있다”며 “노사법치의 원칙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에서 노사 공정을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노동자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 즉 단결해서 자신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단체교섭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할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노조법은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하고 있을 뿐, 헌법이 보장한 대로 행사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사용자 자본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나아가 틈만 나면 산업현장의 혼란, 국민불편과 국가경제 피해 운운하면서 권력은 자본의 편을 들기 바쁘다. 파업, 노동자의 자유를 두고서는 이 나라에서는 노사 공정을 말할 수는 없다. 일방적인 사용자 자본을 위한 권력의 불공정이 있을 뿐이다. 상습 체불사업주에게 불이익을 주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당부가 공정한 권력의 모습으로 보이길 바랄지 몰라도,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보자면 이 나라에서 권력은 불공정한 법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노란봉투법을 거부하면서 권력은 “민사상 손해배상 원칙에 예외를 둬 건강한 노사관계를 크게 저해”한다고 강조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노조법은 노동자의 파업투쟁을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해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서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 교섭하고 쟁의하는 정상적인 노사관계 실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올바른 노사법치의 원칙은 불공정한 노조법을 두고서 실현될 수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