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무사안일 칼럼 첫 회가 나간 뒤 “일환경건강센터는 알겠는데 도대체 PL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PL은 프로페셔널 리더(Professional Leader)의 약자다. 센터는 직급체계가 없는 수평적 조직이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PL이라고 부른다.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라고 말할 때 그 ‘선수’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무사안일> 그 두 번째 사연은 센터 PL들의 ‘무모한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지나쳐 버린 질문, 동네식당 노동자 건강

청주시 가경동에서 2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수지(가명)씨. 외환위기 당시 퇴사해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테이블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은 홀, 튀김기와 싱크대가 전부인 주방에서 이씨는 닭을 튀기고 남편은 배달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먹고 사는 일의 비애는 이들 부부의 몸에도 흔적을 남겼다. 끓는 기름에 덴 화상자국, 튀긴 닭의 기름을 털어내다 생긴 팔꿈치 통증, 온종일 서서 일하다 도진 허리 통증…. 여기에 배달 중 교통사고 위험이나 진상손님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한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폐암에 걸렸다는 뉴스를 봤어요.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온종일 기름연기 속에서 일하다 보니까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요. 뭘 먹어도 쉽게 체하고요.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폐암 검사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1년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산재로 승인된 후 올해 10월까지 117명이 산재로 인정됐다. 주로 튀김요리를 다루는 중국음식점 주방장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선행연구에 따르면, 고온의 튀김·볶음·구이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에 지속 노출되는 업무의 특성과 폐암 등 질병 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높다.

식당 조리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은 또 있다. 무거운 식자재를 옮길 때(근골격계질환), 식자재를 세척하고 다듬고 썰 때(손목 통증), 칼·가위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할 때(베임·절단), 음식을 끓이고 데치고 튀기고 볶을 때(기름·증기 노출 화상, 고온의 열원에 의한 온열질환), 설거지할 때(손목 통증, 세정제 사용에 의한 피부질환) 위험이 커진다.

무모한 도전 ‘동네식당 환기시설을 바꿔라’

그런데 학교급식 노동자와 달리, 동네식당 노동자 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다. 이유가 뭘까. 차이는 문제를 제기한 주체에 있다. 학교급식 문제는 ‘노조’가 노동자 건강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대표 사례다. 노조가 급식노동자 폐암을 산재로 인식하고 당사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면서 집단으로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 반면 동네식당의 경우 대리인을 찾기 어렵다. 동네식당에 폐암 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동네식당 노동자 건강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낼 만한 조직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일환경건강센터가 ‘외식업 종사자 환기시설 개선사업’에 나섰다. 영세한 동네식당의 유해물질 노출수준을 평가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작업환경 개선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센터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청주시 소재 5개 식당을 선정해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했다. 지원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한국외식업중앙회 충북지회의 도움을 받았다. ○○설렁탕, ○○해물칼국수, ○○치킨, △△치킨, ○○깐풍기 등 5곳이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센터 소속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안전보건 컨설팅업체 전문가들이 팀을 꾸려 해당 사업장들을 방문해 작업환경 개선의 방향을 잡았다. 점검 결과 △튀김 과정에서 벤젠·포름알데히드·아크릴아미드·다핵방향족탄화수소(PHAs)·초미세분진 등이 조리흄 형태로 발생할 수 있고 △조리과정에서 고온다습한 수증기와 열기로 고열이 발생할 수 있고 △식재료를 손질하거나 식기를 세척할 때 금속 등이 마찰하는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으로 유해요인의 실제 노출 정도를 파악했다. 식당 내 조리구역의 미세먼지와 고열·일산화탄소는 지역시료(Area sample) 포집방법으로 측정했다. 소음과 벤젠·아크릴아미드·포름알데히드는 개인시료(Personal sample) 채취방법으로 계측했다. 기존에 설치된 조리대 배기장치 입구의 유속은 열선풍속계로 쟀다. 측정 결과는 고용노동부 고시(2020-48호) 화학물질 및 물리적인자 노출기준을 적용해 평가했다.

전국 80만개 식당, 종사자 211만명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측정 결과 시간대에 따라 유해인자의 발생량이 불규칙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급식시설과 달리 소규모 동네식당은 손님이 몰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음식 조리 양의 차이가 컸다. 규모와 작업환경이 천차만별인 동네식당의 경우 표준화된 안전보건관리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유해환경으로부터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려면 대치·격리·환기가 필요하다. ‘대치’는 작업장의 유해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덜 해로운 물질로 대체해 노출 원인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격리’는 작업자와 유해인자 사이에 물체·거리·시간 같은 물리적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기름 없이 닭을 튀길 수도 없고, 사람 한두 명 겨우 지나다니는 주방에 물리적 장벽을 두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환기’ 설비 교체는 이런 사정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다. 세월의 흔적처럼 기름때가 찌든 환기시설을 철거하고 작업장 조건에 맞춰 설계한 새 설비로 바꿔 달았다. 센터가 동네식당 5곳의 조리대 배기장치 등을 바꾸는 데 쓴 비용은 총 3천206만원. 적은 돈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음식·주점업 사업체는 80만1천곳에 달한다. 전국의 음식점업 취업자(163만1천명)와 주점 및 비알코올 음료점업 취업자(48만7천명)는 211만명이 넘는다. 현실적으로 해당 노동자의 건강을 직접 관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많은 매장의 환기장치를 교체하기도 불가능하다.

동네식당 노동자도 안전보건교육·폐암 검진 필요

일환경건강센터의 ‘외식업 종사자 환기시설 개선사업’으로 환기구 교체가 이뤄진 청주 ○○치킨<일환경건강센터>
일환경건강센터의 ‘외식업 종사자 환기시설 개선사업’으로 환기구 교체가 이뤄진 청주 ○○치킨<일환경건강센터>

 

유해환경으로부터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는 마지막 수단은 ‘교육’이다. 식품위생법 41조6항에 따르면 식품접객업 영업을 하려는 자는 집합교육 형태의 식품위생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같은 민간단체들이 위탁교육 형태로 진행한다. 그런데 교육내용 대부분이 ‘음식을 먹는 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라도 식품위생교육 같은 법정 의무교육에 종사자 안전보건교육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장기간 조리흄에 노출된 조리노동자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폐암 검진비용 일부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실제 산재 인정을 받은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일반 검진으로는 폐암환자를 선별해내기 어렵다. 따라서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노동자만이라도 폐암검진을 받아볼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근속연수와 연령, 음식의 조리방식 등을 고려해 고위험군을 추리고, 이들부터 검진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근로자 건강관리수첩 제도를 활용해 식당노동자의 폐암을 조기에 찾아내자는 의견도 있다. 근로자 건강관리수첩 제도는 장기간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는 직업성 암 등 직업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조치하기 위해 도입됐다. 석면 등 15종의 발암성 유해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업무에 일정 기간 이상 종사한 노동자에게 발급된다. 수첩 발급 대상에 식당 조리노동자를 포함해 퇴직한 뒤에도 주기적으로 검진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다. 범정부 차원의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 안에서 식당 노동자 건강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노동자 건강 문제를 동네식당 사장님에게 맡겨두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센터가 환기시설을 교체해 준 5곳의 식당 중 1곳이 1년도 못 돼 문을 닫았다. 죽느냐 사느냐, 경기침체의 터널 안에선 하루하루가 생존의 기로다.

일환경건강센터 PL (tokki79@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