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철 성요셉노동자의 집 국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선원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어선원의 임금 차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베트남 국적 A씨는 우리나라 어선에서 꽃게·오징어·새우 등 해산물을 잡는 일을 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5~6일간 돌아오지 못했다. 하루 6시간의 수면시간을 빼면 휴식은 없었다. 기상악화로 선박 출항이 불가능한 경우 쉴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휴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무리한 조업은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2020년 5월4일 오전 7시께 A씨는 그물을 감다가 쇠줄에 손이 감겨 오른쪽 손 엄지가 절단되고 어깨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주민, 한국인 재해보상 평균임금 절반 밑돌아

A씨의 산재는 어떻게 보상받았을까.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을 운영하는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는 노사가 정한 월 186만2천240원을 최저임금으로 적용해 장해보상 일시금을 지급했다. 문제는 A씨가 받은 보상금이 선원의 재해보상시 적용되는 평균임금(2020년 기준 월 458만3천14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수협이 산정한 평균임금은 당시 선원 최저임금인 월 221만5천960원에도 한참 모자랐다.

한국인과의 임금 차별에 A씨는 법원으로 향했다. 해양수산부의 ‘선원 최저임금 고시’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과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현행 고시는 외국인 선원 특례를 적용해 노사가 종전 임금수준을 하회하지 않을 정도로만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재해보상시 적용되는 통상임금과 승선 평균임금 최저액도 외국인 최저임금과 동일한 금액으로 하도록 약정했다. A씨측은 최저임금 결정권한을 노조와 선주에게 재위임해 모법인 선원법에 위반되며, 이에 따른 노사합의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승선 평균임금 월 458만3천140원을 기준으로 산정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조국인 판사)은 2021년 8월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해보상시 이주어선원도 한국인과 마찬가지의 승선 평균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보험급 지급시 승선 평균임금 최저액을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과 동일한 금액으로 한다’고 정한 단체협약은 고시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어선원 및 어선 재해보상보험법(어선원재해보험법)은 재해를 신속·공정하게 보상함으로써 어선원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외국인 어선원에 대한 재해보상시 외국인 어선원이 실제로 받는 임금 액수와 지급방법과 무관하게 고시의 승선 평균임금을 적용해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2심 “사용자 비용부담” 노동계 “헌법 무시”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난민인권센터·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이주노동자 노동단체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원이주노동차의 임금차별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난민인권센터·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이주노동자 노동단체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원이주노동차의 임금차별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그러나 2심인 서울고법 행정10부(성수제·양진수·하태한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1심을 뒤집었다. 이주어선원의 임금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 외국인 선원에 대한 근로조건의 내용은 내국인 선원과 큰 차이가 있다”며 “식비나 송환비용 지원 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 내국인 선원과 달리 외국인 선원은 최저임금을 법령에서 일괄적으로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단체협약을 통해 이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재위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용자가 숙식과 송환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임금 산정시 비용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엇갈린 하급심 판단에 따라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이주노동계는 2심 판결이 국적을 이유로 차별 처우를 금지하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난민인권센터·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은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스스로 법을 저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른 대법원 판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2심 판결과 관련해 “표준근로계약서는 국가정책으로 추진된 외국인력 도입제도에 따라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막대한 송출비용·여권 등 신분증 압수·열악한 숙소·임금체불·산재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도록 하는 것인데도 이를 이유로 최저임금 차별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보다 후퇴한 판결” 대법원 판단에 영향 전망

특히 2심 판결은 인종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선주들은 여권을 압류하고 선원노동자의 안전과 휴식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우선시해 산재가 많이 발생한다”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도 모자라 임금을 적게 받아도 된다는 판결까지 하는 것이냐”고 핏대를 세웠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거액의 빚에 묶이고 신분증과 급여통장을 압수당한 채 최저임금도 차별받으며, 그래서 목숨값조차 한없이 싼 이주어선원의 실태는 정부가 비준한 유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나,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협약에 비춰 명백한 강제노동”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방침보다도 후퇴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2026년까지 이주어선원에 대한 최저임금 차별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법원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선주가 송환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최저임금을 차별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해외인력 도입은 중간착취와 인신매매를 수반할 위험이 매우 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집 및 알선 수수료와 관련 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것이 국제노동기구에서 정한 국제기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이주어선원이 낸 소송은 하급심에 약 4건이 계류 중이다. 앞서 35톤급 선박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골절된 인도네시아 국적의 어선원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은 한국인과 동일한 임금 기준으로 산재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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