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총선이 130여 일 앞으로 다가오고 양당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자 여기저기서 ‘제3지대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유승민 전 의원과 더불어 보수신당 데드라인을 제시하며 몸값을 키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를 오갔던 금태섭 전 의원은 이미 지난 여름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 대표와 금 전 의원은 지난 11월 10일 김종인 국힘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점심 회동을 가진 바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둘 말고도 다양한 버전의 ‘제3지대론자’는 넘쳐 흐른다. 이들은 각자의 절박하고도 실리주의적인 필요성에 의해 한 정당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금태섭은 성소수자나 여성주의에 대해선 개방된 견해를 보이고, 노동 정책에 있어선 신자유주의적인 포용성을 내세우는 노선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여왔다. 아마도 이런 혼종적인 노선은 진보정당 내 우경화 흐름과 조우한 듯하다. 정의당 내에서 직무급제 개편 등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론을 주장하던 조성주 등은 지난 11월27일 탈당을 선언하고 금태섭과 함께할 것을 가시화했다. 이 흐름에는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도 함께 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이준석과 한 깃발을 들 가능성도 매우 크다.

다른 버전의 ‘제3지대론자들’도 있다. 최근 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던 국힘 전 의원 이언주는 “이준석 대표는 신당 창당에 대해서 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며 합류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민주당부터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 등 4개 정당을 갈아탄 희대의 철새 중 하나인데, 과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리켜 “밥하는 동네 아줌마”로 폄훼하거나 난민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극우적인 목소리를 내 논란을 샀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표적인 ‘MB맨’이었던 정태근이나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친재벌 정치인 양향자 역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잠시나마 인터넷 페미니스트의 지지를 받은 인물부터 불평등을 옹호하거나 친기업적이고 극우적인 입장으로 일관됐던 사람들까지, 제각각의 처지에 떠밀려 하나로 모이는 현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궁지에 몰려서야 “양당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간의 차이들에 대해서는 갑자기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내년이면 마흔인 이준석과 57세 금태섭이 주도하는 정당이니 ‘MZ정당’도 아니고, 또렷한 이념 지향이 보이지도 않는다. 몇몇은 ‘합리성’을 키워드로 제시하는데, 면면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유일하게 일관된 공통점 하나가 있다면,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모였다는 점 아닐까 싶다. 사람 생각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지대가 형성된다면 정치적 노선이나 사회를 인식하는 견해마저 뭉갤 수 있다는 태도는 오늘날의 정치가 폐기물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방증한다. 그런 제3지대는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가장 기이한 풍경은 이준석과 류호정·장혜영이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장애인 이동권 이슈 등의 대척점에 있던 이들이 갑자기 같은 정당이라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양당 정치가 한국 사회에 절망감만을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금의 양당 정치를 분명 극복해야 한다. 한데 최근의 ‘제3지대론’들은 하나같이 양당 정치만큼이나 우스워 보인다. 정치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선언하면 그게 제3지대가 될까? 그들의 몫이 아니다.

한 사회의 새로운 여론 지형은 어떤 대중적 흐름도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지망생들의 이합집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를 오랜 시간 대변해 왔고, 함께 목소리 내고 실천해 온 사람들의 집단적인 의지의 산물이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최근의 흐름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불평등과 차별, 폭력과 전쟁 등 문제에 아무도 진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대안적인 제3지대는 진보정당의 잃어버린 꿈을 딛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구체적인 억압과 착취에 맞설 다양한 의지들을 모아낼 수 있는 때 만들어질 수 있을 뿐이다. 체제전환운동으로의 재구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운동과 더 많은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노동운동은 아직 그 기반을 만들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그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