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대법원 2023. 11. 9. 선고 2018다288662 판결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1. 사실관계

피고는 세종시 부강면 금호리 소재 부강산업단지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회사이며, 원고는 피고회사의 노동자로서 금속노조의 지회장이다. 2016년 7월26일 오전 7시56분 무렵과 오전 9시30분 무렵 두 차례에 걸쳐 위 산단 내에 상온에 노출되는 경우 독성이 심한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 ‘티오비스’ 약 300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군·경이 모두 출동해 방제작업을 했고, 오전 8시30분 무렵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50미터 거리까지 대피하라’는 취지의 대피방송을 했다. 오전 9시20분 무렵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500미터~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금호 1·2·3리 마을 주민들에게 창문을 폐쇄하고 외부 출입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대피방송을 했다. 또한 같은 산단 관리사무소장은 통제선 내에 있는 6개 공장 노동자들에 대해 대피를 유도했다. 그러나 누출사고 지점에서 반경 200미터 정도 떨어진 피고 회사 작업장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대피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산업단지 내의 30명이 위 사고로 치료를 받았고, 그중 3명은 피고 회사 공장보다 사고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장의 직원들이다.

원고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무렵 누출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용노동부에 대책을 요청하고 피고 회사측에 사고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촉구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원고는 근로감독관과 함께 10시 무렵 피고측 인사담당자를 만나 사고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같은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은 대피를 권유했다. 원고는 소방본부에 전화해 누출된 물질의 유해성과 대피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 등을 질의했고, 소방본부로부터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원고는 피고 회사의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당시 작업 중이던 조합원 28명에게도 대피하라고 말하고, 피고 사측에 이러한 상황을 통보했다.

피고 회사는 원고가 조합원 28명에 작업장 무단이탈 지시 등을 이유로 원고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원고는 징계사유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직처분 무효확인 및 정직기간 동안의 임금지급을 청구했다.

2. 사안의 쟁점

인근 공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사고를 이유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가 주된 쟁점이다. 같은 쟁점을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부 쟁점들이 존재했다. 하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은 누구의 인식(노동자 혹은 객관적인 판단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동자는 상황을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셋, 작업중지권을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가.

3. 판결의 요지

가. 작업중지권에 관한 법리

대상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 규정을 들어 노동자가 업무로 인한 사망,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이와 같은 사유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노동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나. 판단

대상판결은 황화수소가 가지는 위험성, 대피가 이루어진 범위, 근로감독관의 권유 등을 토대로 원고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했다고 보았다. 아울러 원고가 노동조합에 소속된 피고 회사의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했다고 보아,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긍정했다.

한편 대상판결의 원심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하는 등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상황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노조 활동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기에 작업중지권의 행사가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4. 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작업중지권 행사의 적법성을 정면에서 긍정한 첫 사례이다. 우선 작업중지권 행사가 적법한 상황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당시 노동자가 가진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문구에 비추어 볼 때에도 ‘급박한 위험’이 객관적인 것어야 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가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사용자가 대피한 노동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기 때문(현행 산안법 제52조 제4항)이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모두 객관적인 위험성이 존재했는지를 먼저 판단하는 논리구조를 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원고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이 판단의 기준을 다시 확인한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아울러, 대상판결은 명확하게 설시하지는 않았으나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시 상황을 확인할 의무가 없다고 봤다. 1심과 2심은 표현을 조금씩 달리해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위해 먼저 상황을 확인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하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원심은 지휘통제소를 방문할 것이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설시했는데, 지휘통제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작업을 중지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난맥상에 빠지게 된다. 둘, 작업중지권은 이미 매우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을 전제로 예방적으로 행사될 것을 본질적으로 요구한다. 상황 확인의무를 지운다면 이미 위험에 빠진 노동자가 여러 상황 파악 끝에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작업중지권의 본질과 맞지 않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특히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위해 위험원에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은 작업중지권의 현실적인 행사 가능성의 부정에 가깝다. 셋,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하지 않다. 원심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소방과 군경이 모두 출동한 상황을 두고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경우’라고 보고 원고가 ‘손쉽게 객관적인 상황을 확인’했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고가 위험원에 가까이 가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심처럼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상정하는 순간 그 노력의 범위가 무엇인지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노동자가 인식한 사정에 비춰 볼 때, 합리적인 사람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인식할 만하다면, 노동자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는 적법하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대상판결은 이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은 작업중지권의 행사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원심은 작업중지권의 존재가 노동조합에게 일상적인 파업권을 줄 것으로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살면서 처음 듣는 화학물질이 유출된,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을 노사관계 전략에 고려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가장 뛰어난 전략가가 노동조합에 재림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안전을 그 본령으로 한다.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대표가 자신만 위험을 느껴서 대피하고,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대피를 권하지 않는 상황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다. 작업중지권은 본질적으로 집단적으로 행사될 수밖에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이 이와 같은 점을 확인한 것 역시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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