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영 한국괴롭힘학회장 SNS

우리나라 직장내 괴롭힘 관련법은 국제기준에 부응하는 아시아 최초 법률이지만 도입 과정에서의 혼란과 세대·상하 격차에 의한 갈등이 증폭돼 분쟁이 확산되는 부정적 상황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속·반복성 인정 괴롭힘 최소 성립 기준을 마련하는 등 개선책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용자 책임회피·을질 증가 ‘부작용’

한국괴롭힘학회(학회장 이승길·박선영)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대회의실에서 ‘직장 내 괴롭힘 법제화와 경계의 확장’을 주제로 창립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국제적 관점에서 본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주제발표에 나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반복성은 괴롭힘(bullying)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관련법 시행국 대부분이 법적 정의에 지속·반복성을 반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처벌조항이 있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지속·반복성을 법적 정의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는 직장내 괴롭힘의 주요 원인을 보면 ‘악질 가해자’의 존재를 꼽았다. 서 연구위원은 “악질 가해자는 많은 사람을 괴롭힌 사람, 고통스럽게 괴롭힌 사람, 집요하게 괴롭힌 사람 등을 의미한다”며 “해외의 연구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국내 악질 가해자는 약 80%가량이 사용자 또는 그 측근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유독 법령 시행 이후의 부작용이 심각한 편이며,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용자의 보신주의·책임회피 성향 강화 △허위 신고(보상 목적·보복성 신고) △구체적 사실관계 없는 감정적 주장 △을질 증가(회사 내부지침 위반·불량한 근태, 상사에게 모욕적 농담·무례한 행위 반복, 상사가 질책하면 갑질 신고) △피해자 보호조치 수단 악용(조사과정 중 노무사·조사관이 피해자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2차 가해 주장, 피해자라는 이유로 수개월 이상 유급휴직) 등을 제시했다.

개선점으로는 무엇보다 괴롭힘 판단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연구위원은 “일회성 인정 괴롭힘(harassment) 행위와 지속·반복성 인정 괴롭힘(bullying)을 구분해야 한다”며 “지속·반복성 인정 괴롭힘 최소 성립 기준을 마련하고 최소 성립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신고 기각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용자의 예방 계획 및 대책 성실 수행 여부, 사용자의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악용 여부 등 사용자 모니터링 체계 구축, 직장내 괴롭힘 예방과 신고 대응을 주도할 전문인력 양성 등 처벌중심에서 벗어나 교육훈련을 통한 예방문화 조성, 근로자의 성숙한 권리 행사와 사용자의 높은 책임의식을 제시했다.

“사업장 내 갈등·분쟁 시스템 구축해야”

문강분 학회 수석부회장은 기조발제에서 “피해자 관점에서 보다 선제적으로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괴로움 즉 ‘고충’에 주목하고, 사업장 내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도화해야 한다”며 “신속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포괄하는 고충처리제도를 설계하고 고충처리조직의 역량을 향상시켜 괴롭힘 예방에 집중해 조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건강을 중심으로 규율되고 있으며, 노동자의 심리·사회적 건강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인 건강 관점에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보다 세부적이고 실현가능한 기준을 마련하고 사업장에 지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승길·박선영 학회장은 인사말에서 “사회 구성원 서로가 그 고통의 실체를 이해하며 극복하고 협력해 ‘공생’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괴롭힘 문제를 단순한 ‘보호’와 ‘처벌’을 넘어 다양한 학제 사이의 통섭적인 관점을 가진 전문적인 학술 영역으로 진전시켜 민주주의와 연대가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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