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우리나라 헌법 6조1항은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돼 있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치던 이 조항이 내게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갖게 된 것은 지난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에 이르러서였다. 그 해에 우리나라는 ILO 기본협약 중 87·98·29호 협약을 비준했고, 기탁일로부터 1년이 지난 2022년 4월20일께 효력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어떤 효력인가? 헌법 6조1항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 비준된 위 ILO 기본협약은 국내에 유효하게 적용되는 실정법이다. 법은 규범력과 집행력을 수반하는 공동체의 약속일진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형법을 지키고 도로교통법을 지키고 개인정보 보호법을 지키는 것처럼 ILO 기본협약도 지켜야 하는 분명한 ‘국내법’이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법도 아닌 우리나라의 최고규범이자 모든 법의 상위에 있는 헌법 6조1항이 비준된 ILO 기본협약에 부여한 위와 같은 명확한 효력을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들은 ‘법치’라는 말을 수상하리만치 자주 사용하는데, 국내법인 ILO 기본협약 앞에만 서면 갑자기 ‘법 없이도 사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특징이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와 파업을 대하는 원청 사용자들이 그러했고,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에 업무의 개시를 명한 것도 모자라 위반자를 고발하고 자격을 정지시킨 정부가 그했다. 우리나라 스스로 비준한 ILO 29호 협약은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87·98호 협약은 모든 일하는 사람(worker)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보장한다. 여기에는 이른바 자영노동자(self-employed worker)도 포함된다. 또한 ILO 협약의 해석에 있어 가장 높은 권위를 보유하는 전문가위원회, 결사의 자유위원회 등 ILO 산하기구들은 ILO 87·98호 협약으로부터 원·하청 교섭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분명하게 도출하고 있다. 또한 ILO 이행감독기구들의 이러한 입장은 어딘가에 비기처럼 꽁꽁 숨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계가 제기한 각종 사건들에 대한 권고 등에서 거듭 제시돼 왔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열려 있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같은 노동 분야의 주요한 법률들을 우리는 묶어서 “노동법”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노동법을 지킨다” “노동법에 따라서 처리한다”고 할 때는 위 법률들의 내용을 살펴보고 또 그 쟁점과 관련된 판례의 태도를 찾아보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4월부터는 이 노동법전에 우리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도 당당히 포함되게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찾아보듯 ILO 기본협약을 찾아보고, 판례를 찾아보듯 결사의 자유위원회 등의 해석례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관련해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망라적인 연구보고서까지 발간했는데, 왜인지 아직도 ILO 기본협약이 응당 누려야 할 법적 지위를 모른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ILO 기본협약에 대해 법이 아니라 ‘좋은 말로 점철된 추상적인 국제기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본래 법은 ‘공동체가 지키고 추구해야 할 내용을 일반적·추상적 언어로 규정하는 것’을 본질이자 당위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해석과 판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ILO 기본협약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ILO 이행감독기구의 입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법에 대해서는 이점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ILO 기본협약에 대해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없는 셈 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다.

노동관계 당사자는 노동법을 준수해야 한다. ILO 기본협약은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노동법이다. 따라서 노동관계 당사자는 ILO 기본협약을 준수해야 한다. 비준 4년 차를 목전에 두고, ILO 기본협약이 노동법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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