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인천지방법원 2023. 9. 22. 선고 2023노2261
 

▲ 조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 조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1. 사안의 개요

인천항만공사는 항만시설의 신설, 개축, 유지, 보수 및 준설 등에 관한 공사의 시행 및 항만의 경비, 보안, 화물관리, 여객터미널 등 항만의 관리, 운영에 관한 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사업주이며, K갑문(조석간만의 차이가 심한 항만 등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위의 고저를 조절하는 수문) 정기 보수공사를 C 주식회사, E 주식회사에게 공동도급 했다.

C주식회사 소속 피해자 M(남, 46세)은 2020년 6월3일 오전 8시15분경 K갑문 정기보수공사 현장에서 갑문 상·하부 가이드장치 분리작업을 위해 갑문 상부에서 윈치를 이용해 18미터 아래 갑문 하부 바닥으로 H빔(길이 2.5미터, 무게 42.5킬로그램), 유압잭, 공구 등을 내리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인근에 있던 윈치프레임(윈치를 거치하기 위해 철제 앵글로 제작된 틀)이 전도되면서 갑문 아래로 추락했다. 윈치프레임의 컨트롤러 및 H빔에 연결된 가이드 줄을 잡고 있던 피해자도 함께 18미터 아래 갑문 바닥으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했다.

2. 원심 판결의 요지 : 인천항만공사의 지위를 사업주(건설공사도급인)로 판단하고, 산업안전보건법위반(치사) 범죄의 고의를 인정

원심 판결에서 오기두 판사는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는지 여부 즉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라고 짚었다. 그리고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의 의미는 사실상 의미가 아니라 규범적으로 평가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로 판별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의미에서 실제로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해야 할 지위에 있는데도 그와 같은 책임을 방기하고 실제로 총괄·관리하지 않은 도급인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하는 의무를 면하고,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해야 할 지위에 있지 않은 영세한 1차 수급인은 처벌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원심 재판장이 볼 때, 사법부의 이러한 법해석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갑질’이 산업현장에 만연하는 불평등 산업구조 형성을 법원이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같다고 봤다.

원심은 ① K갑문을 항만시설로 유지·보수하는 업무는 인천항만공사의 기본적인 업무로 평가되는 점, 피해자가 인천항만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사망한 점, 인천항만공사는 C주식회사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인천항만공사의 시공상 규범적 지위는 “총괄·관리하는 자”에 해당하고, ② 검사가 제출한 입증자료에 따르면 2020년 K갑문 정기 보수공사에서 인천항만공사는 사실상 시공을 주도해 이를 총괄·관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단한 바,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167조 규정 형식에 비춰 볼 때 근로자 사망은 피고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과 그에 대한 고의, 그리고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인정이 일차적으로 요구되고, 나아가 근로자 사망에 관해 결과적 가중범에서 요구하는 객관적, 주관적 각 예견가능성과 비슷한 정도의 주관적 범죄성립요건만 인정되면 유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인천항만공사의 사장은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뤄지고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고 판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도 인정했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 인천항만공사의 지위를 건설공사발주자로 판단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치사) 범죄의 고의를 부정

대상 판결에서 항소심 법원은 원심이 인천항만공사를 도급인으로 판단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한 판단을 모두 부정하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항소심 법원은 ①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로서 산업재해 예방 등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사정을 두고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했다고 볼 수 없고, ② 2019년 1월15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은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응해,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하고 수급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억제하는 데 취지가 있으며, ③ 법률상 해당 건설공사를 시공할 자격이 없는 경우 그 건설공사를 다른 사업주에게 도급하지 않고서는 공사를 할 수 없으므로 해당 공사를 자격과 능력을 갖춘 건설업자에게 도급한다고 해 위험의 외주화의 문제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고, ④ 건설공사의 시공을 직접 수행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자가 그 공사를 다른 사업주에게 도급한 경우, 공사를 도급한 자는 해당 공사의 공정이나 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의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은 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작업 중 추락 및 미끄러짐에 주의할 것에 대해 정기적으로 교육하고, 안전난간을 설치하는 등 안전조치를 취한 인천항만공사는 갑문 보수공사의 세부 공정에 대해 스스로 파악해 예기치 않은 사고에 대비할 수도 없었는 바, 인천항만공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4. 대상 판결의 의의

입법부는 국민이 선출해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만들어진 법을 국민의 뜻에 따라 해석해 그 뜻이 사회에 그대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원심 판결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34조6항을 원용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2019년 1월15일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를 수차례 반복하며 산업현장에서의 안전 불감증에 기한 사망사고 발생 행위를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탄, 국민의 뜻을 판결로 구현했다.

반면 대상 판결은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했음에도 “전문분야 공사로 시행되는 경우 사업주가 각 공사 전부를 분야별로 나누어 수급인에 도급을 줘 자신이 직접 공사를 수행하지 않고 사업의 전체적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등 관리·감독만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29조1항의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업’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2. 3. 31. 선고 2020도12560 판결)에서 후퇴해 건설공사도급인 범위를 축소했다. 뿐만 아니라 도급인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를 부정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무죄 판결을 다수 이끌어 낸 법리(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6도8874 판결 등)를 그대로 적용해 설사 인천항만공사가 도급인에 해당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상 판결은 인천항만공사는 전문적인 공사를 도급했고, 도급인은 그 시공과정을 몰라서 위험성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범죄 성립의 주관적 구성요건 요소인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멋진 논리를 만들었지만, 책임전가의 논리적인 근거를 다른 언어로 재구성해 국민들이 분노한 지점을 간과했다.

힘없는 하청업체 종사자들이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하고 위험만 부담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적어도 생명이 꺼진 시점에서는 이익을 얻는 원청이 책임도 져야 마땅하다는 국민 뜻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갑문 보수공사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위험을 부담했는가? 국민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용어를 알지도 못한다. 마지막 남은 대법원의 판단은 국민의 뜻에 따라 사회에 구현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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