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양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 해피실버타운분회(분회장 박혜경)가 지난해 7월19일 부산의 노인의료복지시설인 해피실버타운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박혜경 분회장 제공>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정년이 지난 요양보호사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 자체를 부정하는 판결을 했다. 촉탁직 재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규정이나 관행이 없어 기대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더구나 정년이 다가온 노동자 5명 중 3명이 재고용되지 않았다는 부분을 근거로 삼았다. 재고용 ‘관행’이 있었다면 별도 규정이 없더라도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결과 배치된다.

주심은 올해 7월19일 취임한 권영준 대법관이 맡았다. 권 대법관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재직 당시 대형로펌 7곳에 법률의견서 63건을 제출하고 18억1천만원을 받아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취임 후 두 달 동안 의견서를 냈던 대형로펌의 대리 사건을 회피했다. 이번 사건은 대리인이 중소로펌이라 주심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반노동’ 판결이라는 지적과 함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인다.

60대 요양보호사, 징계받고 정년 되자 해고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일 부산의 노인의료복지시설 해피실버타운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다온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해피실버타운측은 1심에서 지고도 계속 소송을 이어 왔다.

소송은 요양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 해피실버타운분회장인 박혜경(62)씨가 정년인 만 60세가 지났다는 이유로 2020년 7월 해고되면서 시작됐다. 요양원의 취업규칙에는 업무 필요에 따라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었지만, 박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요양원이 표면상 내세운 근로계약 종료 사유는 ‘정년 도과’였다. 그러나 ‘징계’가 사실상 촉탁직 거절의 사유가 됐다. 박씨는 2020년 4월 ‘직장내 성희롱’을 했다는 이유로 무급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박씨가 요양원 입소자와 다른 직원 앞에서 춤을 추며 뱃살과 속옷을 3~4초간 노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모두 ‘여성’ 입소자만 있었는데도 징계사유가 됐다.<본지 2022년 7월21일자 “‘뱃살노출’ 사유 해고한 요양시설, 법원에서도 패소” 참조>

요양원은 입소자인 ‘원장 아버지’의 낙상사고의 책임을 물어 박씨에게 경위서를 작성케 했다. 결국 박씨는 2020년 7월 만 60세 정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이 종료됐다.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쟁점은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는지였다. 노동위원회와 1심은 모두 기대권을 인정했다. 촉탁계약을 맺은 직원이 13명이고 상당수가 수차례 계약을 갱신한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심 역시 박씨에게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고, 요양원이 이를 거절한 것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고용 거절된 1명을 근거로 삼은 대법원

반면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기대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촉탁계약 거절의 정당성 판단까지 나아가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거나 사업장에 재고용 관행이 확립돼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참가인(박씨)에게 정년 도달 후 원고와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되리라는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기대권 부정의 근거로 △운영규정에 재고용 보장 취지의 조항이 없는 점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정년까지로 명시된 점 △정년퇴직 처리된 근로자가 있는 점을 들었다. 특히 정년이 다가온 직원 5명 중 박씨를 제외하고도 2명이 재고용되지 않은 부분을 고려했다. 대법원은 “정년 도달을 이유로 계약이 종료된 1명의 경우 재고용을 원했는데도 안 된 것인지, 그러면 재고용 거절 사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고용 의무 규정과 재고용 심사기준 및 절차도 없다고 봤다.

이미 13명 촉탁직, 법조계 “대법원 제한적 해석”

이번 판결은 기존 판례 경향과 다르다. 대법원은 올해 6월 경비업체 ㈜포센 직원의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재고용 ‘관행’이 확립됐다고 인정되는 등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재고용 비율과 재고용 거절 사유, 재고용 실시 경위·기간을 종합해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사건도 하급심은 ‘촉탁계약 체결 비율’을 근거로 재고용에 대한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봤다. 5명 중 2명이 촉탁직으로 계속 일한 부분을 강조했다. 올해 6월 대법원 판결과 유사한 맥락이다.

법조계는 ‘반노동’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고용 기대권에 있어 실제 사용자가 재고용한 선례 및 근로자의 귀책 없이 부여한 신뢰를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요양원에서 이미 촉탁직 근로계약을 1번 또는 2번 체결한 두 명의 사례가 있다면 재계약되지 않은 한 명의 사례가 갱신기대권 인정에 반드시 장애가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촉탁계약을 반복 체결한 전례가 13명이나 되는데 대법원이 비교 대상을 정년 이전에 입사한 근로자로만 좁혀서 비교한 것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해고 당사자인 박씨는 1명의 촉탁직 미체결에 관한 대법원 판단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같이 근로계약이 종료됐던 동료 1명은 나보다 네 살이 많은데 이미 2019년에 재고용돼서 계속 일했다”며 “대법원은 재고용 의사나 거절 사유가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동료는 재고용 의사가 강했는데, 원장이 ‘물갈이’한다고 말하고 나서 12월31일자로 해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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