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ILO 조항 탈퇴”라는 말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인데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음을 절규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비상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국제노동기구(ILO) 탈퇴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실은 “현장에서 들은 얘기를 생생하게 국무위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라며 선을 그었지만, 가벼이 넘기긴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ILO 조항 탈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실제 가능한 일일까.

‘협약 비준 철회’ 얘기했나

‘ILO 조항에서 탈퇴’라는 표현은 애초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UN 산하 노동분야 전문 국제기구인 ILO 탈퇴, 혹은 ‘ILO 협약 비준 철회’로 해석될 수 있다. ‘조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감안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뜻은 한국이 1998년 비준한 ILO 협약 중 111호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 협약’ 비준 철회다.

이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고용과 직업에 있어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추진”해야 한다. 이때 차별은 인종·피부색·성별·종교·정치적 견해·출신국·사회적 출신 성분에 의거해 행해지는 모든 차별·배제·우대를 뜻한다. 협약 비준국은 협약의 기본정책에 위반되는 법조항을 철폐하고 행정조치 및 관행을 수정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등적용은 111호 협약에 정면 위배되는 셈이다. ‘ILO 조항 탈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준 협약 철회 원칙적으론 가능
“현실에선 불가능, 해서도 안 돼”

국가가 비준한 ILO 협약을 철회하는 일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쉽지 않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출신 국가를 이유로 차별을 용인하는 행위는 세계인권선언, ILO의 목적에 관한 선언인 ‘필라델피아 선언’에도 위배된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모든 인간은 인종, 신앙 또는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 및 존엄과 경제적 안정 및 기회균등의 조건에 있어서 물질적 안녕과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차별금지 문제는 111호 협약을 비준했다, 아니다의 문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ILO 헌장(필라델피아 선언)의 정신이고, UN 세계인권선언의 기본정신”이라며 “두 국제기준은 비준한 국가만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지켜 나가야 할 일반적 국제질서”라고 강조했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는 “차별 금지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들어가 있다”며 “자유무역협정문을 재협상하거나, FTA 협정문을 재협상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EU FTA 협정문 13.4조에는 “양 당사자는 국제노동기구 회원국 지위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와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의 철폐(111호 협약) 등의 원칙을 존중, 증진 및 실현하기로 약속한다”고 규정돼 있다.

현행 국내법으로도 외국인 노동자 차별 불가

설령 비준협약을 철회해도 실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등적용 정책으로 이어지긴 힘들다.

국내법도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차등적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6조는 “사용자가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22조도 “사용자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해 처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도 근로기준법 14조의 정의처럼 외국인 노동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므로,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해석한다.

박은정 교수는 “헌법상 평등권 이념에서 봤을 때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당연히 금지된다”고 덧붙였다.

“우익 포퓰리즘 겨냥”

실현이 어려운 이야기를 국무회의에서 꺼낸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총선을 앞두고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는 “조직 노동은 자신의 편이 아니니 미조직 노동이나 자영업자들을 정권의 기반으로 삼고 싶은 것”이라며 “일종의 우익 포퓰리즘으로 실현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데 정책을 던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ILO 비준 협약을 손대지 않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기 위한 기반 작업으로 볼 여지도 있다. 국민의힘과 재계는 지속해서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을 제안, 주장해 왔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주장한 것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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