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작업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는데도 상시근로자가 50명 미만인 부품사 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고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됐지만, 법원은 작업자 과실을 이유로 대표에게 ‘면죄부’를 줬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가 현실화할 경우 사고예방 효과와 처벌의 강제력이 더욱 약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 유예 필요성을 언급했다.

세척기계 끼여 사고, 울타리·경고표지 없었다

3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경기 화성시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자 대표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소사실 중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죄는 무죄가 확정됐다.

직원 B(사망 당시 54세)씨는 2021년 3월 제품 세척작업을 하던 중 기계의 실린더 리프트가 상승하면서 리프트와 기계 본체 사이에 목 부분이 끼여 약 2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회사는 상시근로자 43명이 일한 소규모 사업장이다.

B씨는 동료와 교대로 제품 1·2차 세척작업을 담당했는데 사고 당일에도 B씨는 2차 세척을, 동료는 1차 세척을 맡았다. 그런데 휴식을 취한 다음 동료가 뒤돌아보니 B씨가 기계 뒤편에 들어가 세척기 리프트와 기계 본체 사이에 목이 끼인 것을 발견했다.

검찰은 A씨가 세척기 후면에 ‘방호울(울타리)’과 ‘경고표지’를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했다. 기계의 ‘노동자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 부위’에 덮개·울·슬리브·건널다리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도 사고 이후 안전조치를 미이행한 사실을 적발했다.

“재해자 이례적인 행동” 2심 사업주에 ‘면죄부’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법인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는 범죄의 증명이 없었다며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가 난 리프트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기계 후면으로 접근해야만 작업자에게 노출돼 위험성이 크지 않았다고 봤다. 기계 ‘전면부’에서만 작업자들의 수동작업이 이뤄졌고, ‘후면부’는 기계 정비만 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후면부에는 잠기지 않은 철제문이 있었다.

재판부는 A씨가 작업자들에게 기계 오류시 관리자에게 알리고 직접 기계 후면으로 가서 기계를 건드리지 않도록 경고해 왔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B씨가 지침을 어기고 기계 후면으로 접근해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기계 작동이 멈춰 후면으로 들어가 점검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전문 지식도 없고 전면부에서만 작업해야 할 피해자가 갑자기 철문을 열고 후면으로 접근해 머리 부위를 넣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리라는 것을 사업주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재판부는 B씨의 ‘이례적인 행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A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사망 80%가 50명 미만 사업장인데
윤석열 대통령 “소규모 사업장 내년 법적용 우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는 산재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법정형이 ‘징역 7년 이하’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법정형은 ‘징역 1년 이상’으로 하한선만 정해져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면 의무 위반 범위가 넓어져 A씨에게 더 높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법조계는 평가한다.

이 때문에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법원이 입증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산재노동자 10만7천214명 중 7만9천788명(74.4%)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 사망자수가 전체의 80%(874명 중 707명)를 차지한다.

하지만 여당은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를 추진 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지난 9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시기를 내년 1월27일에서 2026년 1월27일로 2년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계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8월23일 법 시행 유예를 요청했다.

경제6단체도 이날 ‘50명 미만 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을 재차 관심 가져달라며 국회에 당부했다. 정부는 여당 움직임에 발맞추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난주 대통령실에서는 다양한 민생현장을 찾아 국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듣고 있다”며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면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 사망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번 사건은 항소심에서 작업자 과실을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부분이 무죄로 선고됐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의무에 대한 법원의 협소한 해석이라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되면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에 관한 판단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안전보건규칙 87조가 정한 ‘근로자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 부위’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 온 법원의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사법부는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고에 관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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