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현제)가 26일 오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의 ‘2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면서도 2·3차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직접고용의무는 인정하지 않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의 연장선에서 나온 판단이다. 법원이 협력업체에 따라 다른 잣대로 판단해 비정규직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이 인다.

대법원, 8개월 만에 하청노동자 상고 기각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A씨 등 18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약 6년7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심리를 8개월여 만에 끝냈다.

대법원은 2차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B씨 등 1명에 대해선 현대차와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근로자파견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B씨 등 3명의 상고를 기각했다. 나머지 1차 하청 소속 노동자 15명의 근로자파견관계는 긍정했다.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나 부품사에 고용된 A씨 등은 현대차의 지휘·명령을 받아 울산공장에서 일했다며 2017년 3월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협력업체들이 현대차와 체결한 도급계약의 실질은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파견사업주인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울산공장에 파견돼 현대차의 지휘·명령을 받으면서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인정, 2심은 2차 하청 모두 기각

1심은 2차 하청노동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에 대한 불법파견은 인정했다. 현대차가 생산량·월별 가동시간·시간당 생산대수·가동률·직접일정 등을 상세하게 계획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하청노동자들은 도장·의장 등 직접공정 이외에도 서열·불출, PDI, 출고·포장, 범퍼제작 등 간접공정도 수행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담당한 업무의 전문성이나 기술성이 부족하다고 해석했다.

특히 서열·불출 공정을 담당한 2차 하청노동자 2명에 대해서도 정규직과 작업의 실질은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나머지 1명이 담당하던 ‘드라이브 샤프트 불출’ 업무와 관련해선 애초 부품사가 하던 업무로서 분리 도급이 가능하다고 보고 하청업체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반면 2심은 2차 하청노동자 모두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했다. 업무 수행방식이 동일하다고 해서 2차 하청 소속 노동자들이 현대차의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서열지나 서열모니터 등은 협력업체와 관계없이 제공되는 필수적인 정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가 하청노동자들의 근태나 인사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서열·불출’만 불인정 “단순 작업 고려 안 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서열·불출’ 업무를 수행한 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을 부정한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단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당시 원심이 2차 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13일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 2차 하청노동자 3명에 대해 패소로 판결했다. 서열지·서열모니터·물류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작업했어도 원청의 지휘·명령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노동계는 대법원이 일정한 기준 없이 비정규직을 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은 이날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3차 하청이라는 이유로 위장도급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한다면 현대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꼼수’”라며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험난하고 위험한 업무를 하며 차별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울어진 윤석열 정권의 사법부에 인생을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조직하고 투쟁하는 노조답게 교섭과 합의로 풀어 나가는 해결책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2·3차 하청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결한 대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기업인들의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던 윤석열 정부가 현대차 재벌에게 면죄부를 쥐어 준 정경유착”이라며 “이번 판결은 자본가들이 앞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이중·삼중으로 착취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 준 재벌 살리기·노동자 죽이기의 포석”이라고 규탄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조세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울산사무소)는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차 공장 내에서 생산라인과 일정에 맞춰 사용될 부품을 서열·불출하는 단순·반복적인 작업을 하는데도 현대차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중요하게 고려되지 못한 것 같다”며 “다만 패소한 노동자 1명은 1차 업체가 부품사라 모든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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