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금속노조 법률원)
▲ 박다혜 변호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금속노조 법률원)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 원인을 규명하거나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원인조사 근거 규정을 두고 있다. 그에 따라 노동부는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현장 방문 조사, 목격자 진술 청취, 관련 서류 검토 등을 실시한다. 조사 결과 작성되는 것이 ‘재해조사 보고서’, 정확한 명칭으로는 ‘재해조사 의견서’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 대응 및 예방 정책의 일환으로 작성되는 공식 문서가 재해조사 보고서다.

그런데 재해조사 보고서가 수사자료라며 공개를 거부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루 7명 이상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회에서, 그 죽음의 끝자락을 붙들고 원인을 살피고 예방대책을 묻고 통곡하는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더 자주 듣게 된다. 본래 중대재해 원인 규명과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국가가 조사·작성한 문서가 ‘더 이상 죽지 않게’를 외치는 이들, ‘내 자식이 마지막이길’ 비는 유족들에게 왜 감춰지는 걸까.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함이 원칙이다.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함을 입법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작성·보유하는 문서가 예외일 리 없다. 그렇다면 수사자료여서 비공개라는 말은 타당한가? 아니, 무엇이 수사자료인가? 기본적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수사자료가 된다. 재해 발생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련 모든 문서, 안전보건관리규정, 안전보건교육 자료, 물질안전보건자료, 위험성평가결과, 작업환경측정결과, 안전보건진단결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록 등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생산되는 모든 자료는 물론이고, 단체협약, 교섭 회의록, 공문, 회사 메신저 대화, 카톡 대화도 수사자료가 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수사에 활용 내지 참고하면 수사자료일 것이고 그중 일부는 증거로서 수사기록에 포함될 것이다. 수사 밀행성과 무관한, 심지어 애초에 재해예방이라는 고유한 입법 목적에 의해 생산되던 문서가 수사에 활용된다는 사실만으로 갑자기 비공개로 둔갑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자의적 행정의 결과다. 이런 논리라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정부나 기업이 작성하는 모든 문서가 비공개로 묶인다.

종종 진지한 검토 없이 비공개 근거로 아무렇게나 들이미는 정보공개청구법도 제대로 살펴보면, 수사 관련 자료가 다 비공개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공개될 경우 수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공정한 재판을 침해한다고 인정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한정한다. 언제 재해조사 보고서 공개로 수사가 곤란해지거나 공정한 재판을 침해한 적이 있나? “현저한”, “상당한” 이런 단어가 법에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노동부도 충분히 알 것이다. 법원도 해당 정보가 공개되면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객관적으로 현저하게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지 따진다. 비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 이익과 공개로 보호되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노동부 행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투명성 확보 등 이익 중 무엇이 크고 중한지 비교하라는 것이다. 실제 사례에서도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재해노동자, 지역주민, 안전·보건 활동가들의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비공개로 보호할 경영·영업상 비밀의 범위에 대해서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으며, 설령 그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알권리 충족, 건강·안전의 보호라는 공익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국회에서 재해조사 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공개를 명시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들이 발의된 것은 일면 반갑다. 다만 정부가 법에 따라 생산한 공식 문서는 적극적으로 공개함이 원칙이고 공개를 법에서 따로 명시하는 문서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 개정과 무관하게 최근의 비공개 입장이 부당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은 법원 판례에 비춰보더라도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보들을 제외하고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 공개할 수 있다”는 것으로 공개 시기와 내용이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최소한의 재해 원인과 예방 자료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검찰의 늑장 기소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반복되는 죽음을 지켜만 보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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