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3. 9. 8. 선고 2023구단55101 판결

1. 개요와 쟁점

원고는 공무원으로 자가용을 이용해 퇴근하던 길에, 할인마트에 들러서 생필품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원하던 물건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할인마트에서 집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부상을 입고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재해를 신청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불승인했다. 불승인 사유는 △할인마트 체류시간인 27분을 자택까지의 통상소요시간인 1시간에 비춰보면 단순한 경유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점과 △할인마트의 위치가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원고는 이의신청을 했으나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다음의 사유를 추가로 들면서 불승인 처분이 유지돼야 한다고 보았다. “산재보험법과는 달리 공무원 재해보상법에는 출퇴근 경로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의’ 일탈 또는 중단이 있는 경우에 출퇴근 재해로 인정한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따라서 일탈 또는 중단이 있는 경우라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공무원이 출퇴근 도중 ‘일탈 또는 중단’이 있는 경우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과 같이 취급할 수 있을지 2) 할인마트의 위치가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나 있는지(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중요한지) 3)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에 비해 할인마트 체류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이것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 구입에 있어서 소요되는 시간을 현저히 초과한 것인지(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중요한지)다.

2. 서울행정법원의 판결(확정됨)

서울행정법원은 1) 비록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산재보험법과 같이 일탈 내지 중단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입법취지와 문언의 형식상 출퇴근 도중의 일탈 또는 중단이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서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라면 경로로 복귀한 이후의 사고에 따르는 부상은 공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봤다. 다음으로 2) 원고가 들른 할인마트의 위치는 통상적인 경로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고, 3) 다소 넓은 할인마트에서 물건을 찾다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므로, 27분 동안 체류했다는 사정만 두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 구입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보았다.

3. 평가

가. 이해하기 힘든 처분이 있었던 덕분에 확인된 원칙

“공무원 재해보상법과 산재보험법상 출퇴근 재해의 보상 범위는 달라선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출퇴근 재해는 공무원 재해보상 관련 법령에서 폭넓게 보장되었던 반면에 비공무원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산재보험법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헌법재판소와 입법부를 거쳐 그나마 평등하게 보장되었는데, 이 사건 처분에서는 오히려 공무원 관련 법령이 산재보험법에 비해서 명목상 보상범위가 좁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제시는 틀렸다. 산재보험법은 출퇴근 도중 일탈·중단은 보상대상에서 제외하고(예외), 다만 일탈·중단의 목적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하기 위함이라면 보상대상에서 포함된다(예외의 예외). 반면에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는 애당초에 출퇴근 도중 일탈·중단이 있는 경우 보상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 자체가 없다. 하위규정에도 없다. 따라서 산재보험법과 달리 공무원 재해보상법에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서’ 보상을 못 해준다는 해석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실무상으로도,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사례집을 보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퇴근길에 우회하던 중 발생한 사고나, 복통으로 병원을 들렀다가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도 공무상 재해로 보상한 사례가 있다. 또한 인사혁신처가 2020년 발간한 설명자료에서도,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나거나 출퇴근과 관계없는 행위를 하는 등의 경우에는 불인정”하지만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보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사례집과 설명자료의 내용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나. 할인마트의 위치가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났는지’, 체류시간이 상당히 길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먼저, 이 사건의 경우 포털사이트 지도에 따르면 원고의 직장과 회사의 ‘경로 찾기’를 했을 때 할인마트의 위치가 그 경로 위에 있었다. 이 점에서 원처분기관인 피고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길 찾기’를 하면 여러 가지 경로가 있을 수 있고, 이 사건의 할인마트는 그야말로 거의 집 앞에 위치한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경로가 문제의 할인마트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원처분 당시에 피고는 할인마트의 위치가 통상적인 경로에서 벗어나 있다고 봤는데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보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통상적인 경로에서 ‘벗어났는지’는 본질적인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벗어났는지 여부’가 기준이 된다면, 그야말로 통상적인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장소로의 일탈 또는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데, 그렇게 해석할 법령상의 근거가 전혀 없다. 이렇게 본다면, A마트는 ‘길 찾기’의 경로상에 위치하고, B마트는 경로에서 100미터, 아니 10미터 우회해야 하는 곳에 있다고 했을 때, 경로상에 있는 A마트를 이용할 수 있음에도 B마트를 이용했으므로 경로에서 ‘벗어나서’ 보상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촌극이 발생할 것이다.

다시 산재보험법령상의 문구인 “일탈 또는 중단”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는 통상적인 경로에서 시간·장소적으로 어느 정도 ‘벗어남’을 의미한다. 즉 어느 정도의 벗어남은 불가피하고, 예상 가능한 것이며,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벗어남’의 개념에 천착하기보다는, 일탈 또는 중단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새로운 위험이 창출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 예를 들어서 합리적인 대안이 있음에도 불필요하게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일탈 또는 중단이 있는 경우에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탈 또는 중단 도중의 체류시간이 길었는지도 본질이 아니다. ‘길었는지’는 자의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를 위해 필요한 시간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다.

다. 나가며

이 사건 원고는 2021년 11월 15일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약 22개월이 지난 2023년 9월8일에야 승소 판결을 받고 확정되었다. 인사혁신처와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가 기존의 처분 사례와 설명자료, 그리고 내부지침과는 상반되는 법리해석을 한 나머지, 원고는 22개월 동안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인사혁신처는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출퇴근재해와 관련된 내부지침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지침은 이 사건에서 보듯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결국 산재보험법과 같이, 법률 형식으로 출퇴근재해와 관련된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