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8월부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시행되면서 중앙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87곳이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서울은 2016년 서울연구원에 노동이사를 선임하는 등 지방공기업의 경우 일찍이 노동이사를 선임해왔지만 전국단위 중앙 기관 노동이사제는 이제 막 시행 1년을 맞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이 개정되면서 노동이사제가 법제화됐고 조례에 기초한 지방공기업 노동이사제에 비해 중앙 기관의 노동이사제는 더욱 단단한 기반을 얻게 됐다.

지난 2021년 출범한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공노이협)도 3대 의장을 최근 선출하며 1회 전국노동이사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공노이협 2대 의장을 지낸 김태진(57·사진) 의장은 “최근에 1년 임기를 끝내 인수인계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 ‘한국형 노동이사제’의 정착을 위해 노동계가 전략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2021년부터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로 활동하며 부산시노동이사협의회를 만들고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소재 카페에서 김 의장을 만나 노동이사제 발전 방향에 대해 물었다.

“맨 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노동이사”

- 공노이협은 어떤 목표를 갖고 만들어진 조직인가.
“주로 지방공공기관 노동이사들이 모였다. 서울지역노동이사협의회, 경기 등 지역별 협의회로 존재하다가 2021년 1월 전국단위 협의회를 창립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 노동 공약 중 하나가 노동이사제 도입이니만큼 제도의 전국적 확산을 예상하며 만든 조직이다.

한국형 노동이사제의 확산과 발전을 고민하고 일터민주주의 실현과 지배구조 개선을 연구하고 정착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전국 노동이사들의 연대와 소통, 교류, 그리고 노동이사가 (기관과 노동계의) 정책적 파트너의 역할도 해나가자는 목표도 있다.”

- 노조 위원장과 노동이사 중 어떤 직책이 더 어려운가.
“다 어렵지만 선출과정이나 ‘맨 땅에 헤딩’한 경험을 생각하면 노동이사가 더 어렵다. 노조 위원장은 선거본부가 꾸려지고 팀플레이로 선거를 하지만 노동이사는 6명의 경쟁자 중 혼자서 본선 경쟁 등을 거쳐야 하니까 훨씬 어려웠다. 노조는 인력과 재정이 있다. 하지만 노동이사는 활동시간, 사무실, 재정지원이 전혀 없어 부산시의원들과 끊임없이 만나 조례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지난 3년 임기 중 1년반을 노동이사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데 썼다. 노동이사로서 기여하고자하는 본연의 목적, 지배구조 개선과 일터민주주의 등의 업무보다 노동이사로 활동하기 위한 길을 내는 데 에너지를 썼다.”

“노동이사 참여로 이사회 분위기 바뀐다”

- 노동이사가 되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활동의 한계가 있나.
“재정적, 정책적 한계가 있다. 해고 생활을 오래했는데 그 기간동안 노조에서 호봉을 보전해준다. 하지만 비조합원은 지급근거가 없다. 노조의 동의를 받고 노조 후보로 노동이사에 출마했지만 비조합원 기간 동안 노조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다. 그러다보니 제도적 지원도 안된다. 정책적 뒷받침도 당연히 어렵다. 시민사회나 노조와 함께 이 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 내지는 이사회 구성의 양성평등 조항을 실천해보자는 논의를 해야하는데 비조합원이 되면서 노조와 물리적으로 닿지 않게 되니 그런 고민들을 노동이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산하노조는 노동이사와 관련된 규칙을 만들었다. 공공운수노조에 임원으로 10년정도 있으면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 등에 대비해 노동이사를 지원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철도노조는 ‘노동이사 활동을 노조 활동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조합원 탈퇴 의무는 기획재정부가 지침으로 규정한 건데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로 활동하며 이사회 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 노동이사에게 주어진 권한의 한계나 효능감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사회 안에서 상임이사들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노동이사를 포함한 비상임이사들은 사실 이사회 내 안건들을 잘 모른다. 특히 대중교통, 전문영역의 사업은 더욱 그렇다. 비상임이사가 15명 중 8명으로 다수지만 들러리였다면 2명의 노동이사가 들어가게 되면서 회의시간도 길어졌다. 이사회 논의의 질이 높아졌다.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이 하나의 사례다. 부산교통공사 임원추천위 7명 중 2명은 시장이, 3명은 시의회가 나머지 2명을 이사회가 추천한다. 보통 2명의 몫을 사장이나 상임이사가 주로 추천해왔다면 노동이사가 참여하면서 비상임이사 주도로 임원추천위 구성이 가능해졌다.

시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던 안건에도 개입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장’, 흔히 노조에서 말하던 현장이 우리 노동이사들에게는 이사회이기 때문에 이사회 내부에서 합리적인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한계는 무척 많다. 안건부의권, 감사청구권, 정보열람권 등이 없다. 각종 중요한 경영방침을 정하고 난 뒤 바로 공유받지 않아 의견을 내기 어렵다. 상임이사들은 임원회의에서 즉각 보 받고 의사를 교환하지만 비상임이사들은 이사회때만 안건을 알게 된다. 이런 권한을 요구하면 다른 비상임이사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하는데 노동이사는 독립이사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런 권한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조는 베이스캠프, 노동이사는 등산가”

- 노동이사와 노조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전략적 관계다. 노조가 베이스캠프, 노동이사는 등산가 역할이랄까. 그런데 전략적 관계가 되려면 전략, 노동이사제를 활용하겠다는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양대 노총은 그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 노동이사제가 민간으로 확장된다는 목표를 갖고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공공부문부터라도 조금씩 제도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다만 최근 노사가 함께하는 공공상생연대기금에서 예산을 투입해 강의도 만들고 연구도 하기로 했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하고도 맞춤형 교육과정을 만들기로 했다.

노동계가 노동운동 측면에서 전략을 낸다면 공노이협은 한국형 노동이사제를 ESG경영측면에서 어떻게 실현할지 사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제 막 그런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19일에 열릴 1회 전국노동이사대회도 노동이사들의 역량을 축적하기 위해 만든 행사다.”

-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확산하기 위해서는.

“대세는 노동이사제다. ESG 경영을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이 생존에 절박한 자본 아닌가. 지배구조도 주주관계 모델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재계는 민간에 노동이사제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도 기를 쓰고 반대했지만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노동계도, 노동이사들도 공공기관의 사회적 역할과 경영 혁신을 위해 ESG 관련 특강을 학습하고 우리가 실천할 내용도 발굴해 내야 한다.

유럽의 경우 노동이사제의 목표는 ‘노동자의 경영참가’라는 단일 목표로 분명하다. 우리는 노동이사제의 목표가 경제민주화, 경영감시로 다양하다. 한국형 노동이사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법 개정이 필요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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