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위원회가 두 번 해고된 노동자의 구제신청 ‘의사’를 잘못 해석한 바람에 대법원까지 소송전이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위원회는 해고자가 구제신청 취지를 명시적으로 추가·변경하지 않았는데도 1차 해고가 아닌 ‘2차 해고’로 심판대상을 오인했다. 대법원은 해고자가 같은 취지의 구제신청을 반복해 제기한 것이 아니라며 노동위와 하급심 판단을 질타했다.

새마을금고, 서면통지의무 위반에 재차 해고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경북 구미의 한 새마을금고 전직 전무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2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새마을금고는 2020년 1월 업무상횡령 등 사유로 A씨를 징계면직(1차)했다. 이후 A씨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서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이에 다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 2020년 5월 재차 징계면직(2차)했다. 그러자 A씨는 “회사가 1차 해고를 철회한 적이 없고, 2차 징계면직은 이중징계이므로 위법하다”고 맞섰다. 회사가 1차 해고를 적법하게 철회하지 않은 채 2차 해고를 단행했다는 취지다.

쟁점은 ‘해고 시점’ 즉 심판대상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였다. 새마을금고가 1차 해고를 철회하고 2차 해고를 했다면 ‘2차 해고’에 관해서만 위법성 여부를 다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북지노위는 “회사는 1차 징계면직을 철회하고 새롭게 2차 징계면직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구제신청은 2차 징계를 다투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1차 해고로 구제신청, 노동위에 법원까지 기각

A씨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경북지노위가 구제신청 취지와 다르게 ‘2차 해고’를 심판대상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노위도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A씨는 ‘2차 해고’에 대해 경북지노위에 재차 구제신청을 했지만, 청구 자체가 각하됐다. 중노위도 “원고가 동일한 취지의 구제신청을 거듭해 제기했으므로 구제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노동위원회규칙(60조1항5호)은 “당사자가 같은 취지의 구제신청을 거듭해 제기하거나 같은 취지의 확정된 판정이 있음에도 구제신청을 제기한 경우” 노동위원회는 각하하도록 정하고 있다. A씨는 2021년 3월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노동위 판정을 유지했다. A씨가 구제신청 취지를 ‘2차 해고’의 취소로 변경해 중노위가 이에 관해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설령 구제신청 취지가 변경되지 않았더라도 종전 재심판정(1차 해고 관련)이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는 이상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같은 구제신청 반복 아냐, 1차 기준”

그러나 대법원은 노동위와 하급심 판단의 ‘오류’를 발견했다. A씨가 같은 취지의 구제신청을 거듭해 제기한 경우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고가 초심에서 제출한 이유서에는 2차 징계면직에 관한 구제명령 신청을 추가하겠다는 내용의 명시적인 기재가 없고, 오히려 1차 징계면직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이 기재돼 있다”고 판시했다. 더구나 경북지노위는 신청취지 추가·변경을 승인했거나 승인 사실을 회사에 서면으로 통지하지도 않았다. 노동위원회규칙 42조에 위반된다.

결국 대법원은 A씨의 재심신청 당시 진정한 의사는 ‘1차 해고’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신청취지 자체를 추가·변경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 재심에서 신청취지를 추가·변경할 의사를 표시했더라도 이는 초심 신청 범위를 벗어나 노동위원회규칙 89조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해고자만 애꿎게 희생 “노동위 심리 엄중해야”

A씨가 1차 해고에 관한 재심신청 뒤 약 한 달 만에 별도로 2차 해고로 구제신청을 한 점 역시 종전 구제신청에서 ‘2차 해고’를 다툴 의사가 없다는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종전 구제신청 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1차 징계면직의 옳고 그름만을 판단해야 하고 2차 징계면직은 판단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노동위원회가 A씨의 의사를 잘못 해석했으므로 2차 해고에 관한 구제신청 이익은 여전히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중노위가 심판대상을 오인한 탓에 A씨는 해고된 지 3년 넘게 소송을 이어 가야 했다. 이에 대법원이 노동위의 심판절차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우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는 “노동위가 신청인이 신청취지를 변경하지 않았는데도 임의로 변경했고 특히 2차 해고 사건은 1차 해고와 심판대상이 달랐다”며 “이를 같은 사건으로 보고 각하한 것은 위법하다고 본 대법원 판단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은성 공인노무사(샛별노무사사무소)는 “이번 판결은 당사자 의사를 오독해 구제신청 대상을 혼동한 나머지 구제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을 바로 잡았다”며 “다만 2차 징계면직의 정당성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다퉈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지노위가 노동자 의사를 잘못 해석해 2차 징계면직의 옳고 그름까지 함께 판단한 오류를 대법원에 이르러서야 바로잡혔는데, 향후 노동위 심리 절차의 엄정함을 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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