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 제지펄프제조노동조합(PPPMEU) 간부들이 단체교섭 훈련과정에 참가해 조별토론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 간부 교육을 위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왔다. 제지펄프제조노동조합(PPPMEU) 산하 단위노조 간부 20명이 교육에 참가했다. PPPMEU는 제지펄프 산업의 생산직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한다. 20개 공장을 조직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2천500여명이다. 제지펄프제조업은 남성이 지배적인 산업이라 여성 조합원수는 200명에도 못 미친다. 노조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제지펄프공장은 100곳이 넘는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관계로 말레이시아의 노동조합도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별노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산업별노조나 업종별노조가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 정부는 일본과 한국의 노동조합 체계인 기업별노조주의를 이식했다.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기업별노조와 초기업별노조가 혼재된 가운데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기업별노조는 본질상 종업원단체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직하고 있을 뿐이며, 동종 산업이나 업종에 속한 기업별노조들 사이의 연계는 형편없다. 산업이나 업종 수준에 기업별노조의 연맹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별노조들은 외부 노조와 별다른 연계 없이 특정 기업의 종업원단체로만 기능할 뿐이다.

반면에 산업별노조나 업종별노조는 사업장 밖에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 노조의 조합원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한다. 문제는 사업장 안에 노동조합의 현장조직이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물론 사업장 단위에 노조위원회가 꾸려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노조에 전임자는 물론 사무실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산업별노조 현장조직의 기반인 현장권력(union power at work place)이 텅 비어 있다.

기업별노조는 사업장에 기반한 종업원단체이므로 대기업노조의 경우 사무실이 있는 경우도 있다. 간혹 전임자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업별노조와 업종별노조는 공장과 사무실 안에 현장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사업장 안에서 노조의 현장 활동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다시 산업별노조와 업종별노조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별노조나 업종별노조로 조직된 사업장 안에 노조 전임자와 노조 사무실만 없는 게 아니다. 노조의 재원도 없다. 왜냐하면 조합비가 모두 중앙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조합비도 임금의 1~2%를 걷는 정률제가 아니다. 고임금자나 저임금자나 동일한 금액을 조합비로 내는 정액제가 대부분이다. PPPMEU의 경우 월 15링깃(4천250원)으로 말레이시아 노동조합 가운데 조합비가 가장 많다. 하지만, 15링깃은 조합원 월급 평균액의 0.5%에도 모자란 수준이다. PPPMEU 중앙으로 조합비가 100% 올라가지만 상근자 3명 봉급을 주고, 본부사무실 월세를 내고, 각종 분쟁에 들어가는 변호사 비용을 충당하는 데도 벅차다. 산업과 업종은 물론 사업장에서의 노조역량이 부실하다 보니, 유일 노총인 말레이시아노동조합회의(MTUC)도 사회정치적으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별노조가 말레이시아 노동조합운동을 끌고 나갈 수는 없다. 결국 산업별노조와 업종별노조가 앞장서야 할 텐데, 그 실마리는 결국 노조전임자와 노조사무실 같은 노동조합의 현장권력 쟁취에서 찾을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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