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운수노련 안전운임대표단은 23일 오후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가 마무리되자 각자 소속된 노조 깃발 앞에서 각국 언어로 구호를 외쳤다. <정소희 기자>
▲ 국제운수노련 안전운임대표단은 23일 오후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가 마무리되자 각자 소속된 노조 깃발 앞에서 각국 언어로 구호를 외쳤다. <정소희 기자>

화물노동자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해 과적·과속·과로를 예방하는 안전운임제가 올해 1월1일부로 국내에서 폐지되자 국제 노동계가 서울에 모여 한국 정부에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세계에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알리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방한한 국제운수노련(ITF) 대표단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라던 한국 정부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안전운임제는 여러 국가에서 시행돼 왔고 특히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여러 국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도로 안전을 위한 선도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국제운수노련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
39개국, 61개 노조, 100만명 참여

국제운수노련 안전운임 대표단과 공공운수노조는 23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한국 정부와 국회는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9~21일 한국에 입국한 국제운수노련 대표단은 가나·덴마크·벨기에·영국·우간다·캐나다·케냐·호주 8개국의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1896년 설립된 국제운수노련은 150개국, 740개 노조 1천850만명의 운수산업 종사자 조합원이 가입한 국제 조직이다. 공공운수노조도 가맹 조직이다.

국제운수노련 소속의 각국 운수노조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공공운수노조가 연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 발족식에 참여한 데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국제운수노련이 주도하는 이 캠페인은 39개국의 61개 나라 노동자 100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널리 알리고 각국 정부와 운송사·화주에게 도로 안전을 위해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국제운수노련은 세계 정부에 요구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안전운임제 도입 △적정 운임비 보장 △근로계약 투명성 강화 △화주·운송사 같이 공급망에 속한 모든 당사자를 구속하는 적절한 제도 마련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적정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다. 화주와 여러개 운송사를 거쳐 일감을 받는 다단계 운송산업 공급사슬에 놓인 화물노동자는 낮은 운임으로 과속·과적·과로에 시달린다. 화물차 사고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화물노동자의 생계·안전과 도로 위 시민 안전을 위해 안전운임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을 통해 안전운임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지난해 11·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제도 일몰에 반대하며 파업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끝내 안전운임제를 폐지했다.

▲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소희 기자>
▲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케냐·가나 “한국 안전운임제따라 제도 개발 나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표단은 “안전운임제가 화물노동자뿐 아니라 플랫폼 등 도로 위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월 안전운임제를 대체할 표준운임제 도입을 발표하며 “안전운임제는 해외에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경직적인 제도”라고 주장한 것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보다 앞서 안전운임제와 비슷한 최저운임제를 도입한 캐나다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밴쿠버 항만 컨테이너 노동자들에게 해당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개빈 맥개리글 캐나다 유니포(Unifor) 서부지역본부장은 “지난 2014년 밴쿠버항을 완전히 마비시킨 총파업에 우리 노조가 참여해 안전운임제를 쟁취했다”며 “10년 가까이 제도는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제도 도입 후 항만에서는 총파업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는 “한국 정부는 밴쿠버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안전운임제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제도를 확대하고 위반 기업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강제력 있는 제도를 통해 우리 화물노동자들은 살인적인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단 미하디 케냐운수노조(TAWU) 사무총장은 “우리는 한국의 안전운임 모델 관련 체계 등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도로운송의 모든 부문을 포함해 제도를 적용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캐나다·브라질·호주에서는 한국의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제도들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긱(geek) 경제를 위한 안전운임제 모델 역시 호주, 미국의 뉴욕시 등에서 볼 수 있어 안전운임제가 도로 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스만 이브라힘 가나일반운수석유화학노조 교섭실장은 “가나 통계청이 3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나 노동자의 15%가 비공식 운송업 노동자들로 이들은 적절한 휴식 없이 과로, 저임금 문제에 시달린다”며 “가나 경제의 모든 부문의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안전운임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국제운수노련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 국제운수노련 안전운임대표단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3일 오후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부터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행진했다. <정소희 기자>
▲ 국제운수노련 안전운임대표단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3일 오후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부터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행진했다. <정소희 기자>

“한국 정부, 안전운임제 다시 도입하라”

기자회견이 끝난 뒤 대표단은 산업은행 옆으로 이동해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1천여명이 대회에 결집했다. 참가자들은 “Safe rates saves lives!”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안전운임(safe rates)제가 생명을 구한다”는 의미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후 화물차주의 순수입은 늘었고 월평균 업무시간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컨테이너 노동자의 경우 시행 전인 2019년 월 300만원에서 2021년 월 373만원으로 순수입이 늘었고 시멘트 노동자는 수입이 110.9% 늘었다. 월평균 업무시간은 컨테이너와 시멘트 노동자 각각 5.3%, 11.3% 줄었다. 화물차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는 장시간 노동과 과적이 개선된 것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안전운임제를 전국에 시행했다가 보수 정부가 2016년 제도를 폐지한 호주는 최근 제도를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이클 케인 호주운수노조(TWU) 사무총장은 결의대회에서 “지난 4일 호주 정부는 안전운임제 관련한 법률을 의회에 제출했다”며 “해당 법률이 통과되면 고용형태나 운전하는 차량의 종류에 관계없이 플랫폼 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도로운송 노동자의 보수 기준을 설정하는 정부 기구가 설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주 전역 도로운송 노동자들의 커다란 승리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한 한국 노동자들의 승리이기도 하다”며 “이는 한국 정부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각국의 화물노동자 대표단이 한국의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위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며 “여야는 정쟁을 그만두고 화물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운임제를 재입법하고 지입제를 폐지하는 논의를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대회가 끝난 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행진했다.

▲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대회사로 결의대회 문을 열었다. <정소희 기자>
▲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대회사로 결의대회 문을 열었다. <정소희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