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 (민주노총법률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3. 8. 31. 선고 2022구합56371 판결

1. 사건의 개요 및 쟁점

(1) 위 판결은 씨스포빌 주식회사가 소속 선원들에게 발령한 인사명령의 정당성이 다퉈진 사안이다. 씨스포빌 주식회사는 강릉항에서 여객운송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였는데, 선박 2대(씨스타 5호, 11호)를 소유해 강릉항에서 울릉도, 독도를 방문하는 여객 사업을 영위했다. 씨스포빌 주식회사의 경영진 중 일부는 동해시(묵호항)에서 정도산업 주식회사를 경영했다. 정도산업 주식회사 역시 선박 2대(씨스타 1호, 3호)를 소유해 묵호항에서 울릉도, 독도까지 방문하는 여객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 이 사건에서 문제된 인사명령은 2021년에 이뤄졌다. 당시 씨스포빌 주식회사 소속 2대의 선박은 정상 운행 중이었으나, 정도산업 주식회사 소속 선박 2대는 코로나19 사태로 휴업 중인 상황이었다. 씨스포빌 주식회사 소속 선원 중 일부는 휴업 중인 정도산업 선박으로 배치돼 선원법상 최저임금만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대략 임금의 50% 정도가 삭감됐다. 동해선원노동위원회는 이를 모두 무효라고 판단했으며, 씨스포빌이 불복해 행정소송이 진행됐다.

(3) 쟁송 과정에서 주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① 씨스포빌 소속 선박에서 정도산업 소속 선박으로 배치전환을 명한 인사명령의 실질을 전보로 볼 것인지 혹은 전적으로 볼 것인지 ② 인사발령을 전보의 일종으로 볼 경우 △업무상의 필요성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 △신의성실의 원칙상 요구되는 협의절차 등 전보의 정당성을 갖췄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다.

(4) 사측은 인사명령의 실질이 전적이 아닌 전보라며 선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씨스포빌과 정도산업 소속 선박 사이에 과거 교차승선의 전례가 존재한 점, 두 법인의 경영진 사이에 일부 중첩이 존재하는 점, 교차승선시 퇴직금 및 연차유급휴가 산정에 있어서 계속근로기간의 단절 조치하지 않은 점 등을 주된 논거로 제시했다. 사측은 인사명령의 실질을 전보라고 전제한 후 근로자들에게 일정한 비위사실이 존재했다고 강조하며 전보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대상 판결은 위와 같은 인사명령을 전적의 일종으로 봐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이 사건 인사명령의 실질은 ‘전적’이다. 양 법인은 본점 소재지와 사업자등록 방식, 세금 납부 내역, 회계 처리, 각각 근로자들에 대한 원천징수, 취업규칙의 제정 등을 별개로 하는 법인이며, 경영진이 완벽히 중첩되지도 않는다. 나아가 소유 선박과 취항 항로도, 소속 직원 현황도 상이하다. 특히 근로계약서의 조항 중에는 전적이라는 표제 하에 회사가 근로자 동의를 얻어 타 회사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하며, 이 사건 인사명령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둘째, 전적인 이상 전적 대상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본 건 전적은 무효이다. 특히 본건 사업장 내에서는 전적 시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않는 관행이 존재했다고 볼 사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씨스포빌과 정도산업 주식회사 사이에 교차승선의 전례가 일부 존재한 것은 사실이나, 이 사건 인사발령의 경우 종래의 인사발령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임금 삭감을 수반한 것으로서 종전의 전례 만으로 근로자의 동의 없는 전적이 가능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3. 대상 판결의 의의

선원의 근로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선원법이 적용된다. 가령 근로시간 및 임금에 관한 선원법의 규율은 선원 근로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육상 근로자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규율 체계와 조금은 상이한 지점이 존재한다. 다만 인사명령이나 징계에 관한 규율 기준에 관해 법원이 적용하고 있는 법리는 육상 근로자와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 판결은 종래 인사명령, 특히 전적에 관해 축적된 법리를 깔끔하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흠잡을 여지가 없다. 전적과 전보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은 법인격의 차이 유무다. 동일한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인사명령은 전보가 타당하나, 법인격이 상이한 기업 사이에서 이뤄지는 인사명령은 전적으로 봐야 한다. 전적과 전보는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변경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원고가 주장한 사정 즉, 경영진의 중첩 사실, 기업 사이 교차 인사명령의 전례, 퇴직금·연차유급휴가 산정 과정에서 계속근로기간의 통산 등은 전적인지 전보인지 여부를 구분할 핵심적인 논거로 기능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전적이란 전혀 무관한 기업 사이에 이뤄지는 인사명령이 아닌, 경영적·사업적 밀접성을 갖춘 기업집단 내부에서 이뤄지는 인사명령이기에 위와 같은 사정은 통상적인 전적이 이뤄지는 사업장 내부에서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상 판결은 통상적인 인사명령과도 다르게, 50%의 임금 삭감이라는, 유례없는 수준의 경제적 불이익을 수반한 인사명령이다. (쟁송 과정에서 원고 회사가 주장한 근로자들의 비위사실은 모두 진실이 아니었지만) 설령 원고의 주장과 같이 전보로 판단할지라도 위와 같은 경제적 불이익의 수준으로 인사발령의 유효성은 쉽게 인정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사료된다. 인사발령에 관한 사용자의 재량이, 징계에 관한 근로기준법 혹은 선원법상의 엄격한 규율 체계를 잠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수는 없다.

참고로 이 사건 인사명령의 대상 선원들은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를 결성한 이후 본 건 인사명령을 비롯해 온갖 고초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는 선원들의 노조 결성 이후, 선원들을 해양경찰서에 고소하거나, 해고하는 등 온갖 탄압을 반복하고 있으나 쟁송 과정에서 회사의 주장은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해운지부 소속 선원들이 해고돼 아스팔트에서 복직을 울부짖은 지 700일이 넘어가고 있다. 선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무의미한 쟁송전이 어서 마무리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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