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60년 4·19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권선거로 얼룩진 1960년 3·15부정선거가 원인이 돼 무너진 이승만 독재시대를 반성하면서 4·19혁명 이후 헌법에서 새롭게 명시한 것이다. 우리 헌법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원들이 집권여당 압력에 의해 선거에 동원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지배층은 헌법이 명시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연유하는 ‘업무상 의무’라는 의미를 넘어 근무시간과 근무지 이외에서의 사생활도 규제하는 ‘개인적 의무’이자 ‘시민적 의무’로 둔갑시켰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독일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국민으로서 공무원 각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직업인으로서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를 분리해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공무원에게 국민적 기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처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행정적 직무수행에서의 불편부당성이 아니라 정치적 기본권을 부정하는 명분으로 악용하는 나라로는 대표적으로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제한된다. 정당의 간부는 물론 평당원조차 될 수 없으며, 정치헌금 기부도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무원을 국민(혹은 시민)으로부터 분리해 특수한 계급이나 신분으로 규정하는 전근대적인 제도와 관행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를 ‘공무원의 국민적 기본권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은 민주주의가 덜 발전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주로 발견된다.

‘공무원의 국민적 기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나라’와 ‘공무원의 국민적 기본권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나라’의 중간 유형으로 국민적 기본권인 정치활동을 공무원에게 제한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들을 ‘공무원의 국민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나라들의 법령을 살펴보면 공무원의 정치활동에 대한 전면적 ‘금지’가 아니라 ‘제한’을 가한다. 더 깊게 들어가면 ‘제한을 심하고 경직되게 하는 나라’와 ‘제한을 느슨하고 유연하게 하는 나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나라들은 이러저러한 정치활동은 안 된다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의 접근법을 취한다. 제한의 정도는 정당 가입과 정치기부금 납부 등의 초보적인 정치활동만 허용하는 나라(일본)부터 공직선거 피선거권까지 보장하는 나라(대만)까지 다양하다.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와 일반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분리·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보장한다.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 및 정치활동과 관련해 ‘○○은 안 된다’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금지되는 행위 말고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치활동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기본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대만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준과 비교할 때,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공무원에게 상대적으로 폭넓은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정치활동 자체에 대한 ‘금지’보다는 일정 정도 ‘제한’하는 나라로는 대표적으로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공무원은 정당 가입과 정치자금 납부가 가능하다. 반면 대한민국, 인디아, 인도네시아 등은 공무원 정당 가입마저 부정하고 있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더라도 제한과 금지의 대상으로 고위직 공무원이나 관리직 공무원만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중하위직 혹은 일반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정치적 기본권을 상대적으로 폭넓게 보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이 글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공무원노조연맹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 방안 연구>의 해외사례를 요약한 것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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