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의 기치 아래 노조전임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가 불법의 온상이라며 근로감독관을 동원해 적발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껏 노동문제를 다뤄오면서 ‘노사 자치주의’는 들어봤어도 ‘노사 법치주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사 법치주의’의 현대적 기원은 1933년 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의 나치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산주의 박멸의 의지로 충만했던 나치당은 노동조합운동이 반국가 세력에 장악됐다면서 법치주의 미명하에 노동조합을 불법화하고 단체교섭을 파괴했다.

독일에서 ‘노사 법치주의’는 국민총력체제와 국가총동원체제로 노동자를 몰아넣어 전쟁경제를 부추겼고, 그 결과 히틀러의 나치당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다.

민주적 자본주의 미국과 공산주의 소련의 연합으로 연합국의 승리가 분명해지던 1944년 5월 국제노동기구(ILO)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국제노동대회를 열고,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ur is not a commodity)”는 선언을 ILO 헌장으로 채택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강제수용소에 “근로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에 대한 민주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연합국의 공동 대응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필라델피아 선언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국가들은 ‘근로할 자유’(free to work)를 강조했다. “근로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독일 나치의 구호였다면, “근로로 국가에 보답하자(勤勞報國)”는 조선총독부의 구호였다. 조선총독부가 조선 민중을 국민총동원 전시경제체제로 몰아가면서 공산주의 냄새가 나는 노동이란 말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말이 ‘근로’와 ‘노무’였다.

1938년 4월 일본 제국의회가 ‘국가총동원법’을 통과시키자, 그해 5월 조선총독부는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1939년 3월 일본 본토에 내려진 ‘임금통제령’은 8월 조선에도 시행되었다. 1940년 11월 일제 각료회의가 ‘근로신체제확립요강’을 발표하자, 이듬해인 1941년 3월 조선총독부는 내무국 산하에 ‘노무과’를 신설하고, 6월 ‘조선노무협회’를 창설했다.

일본 해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 1941년 12월 일제는 ‘노무조정령’을 발표했고, 1942년 1월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노무조정령’을 시행했다. 대동아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8월 조선총독부는 ‘학도근로령’과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했고, 1945년 3월 ‘국민근로동원령’을 시행함으로써 조선반도에서 전체주의 국가총동원체제를 완성시켰다.

2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ILO는 전체주의 파시즘 체제의 부활을 막기 위한 국제노동기준의 제정에 돌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협약 가운데 하나가 1947년 채택된 81호 노동감독(labour inspection) 협약이다.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근로’ 잔재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에서 근로감독이라 불리는 노동감독은 근로(work)가 아니라 노동(labour)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좌우 합작으로 극우 전체주의를 타도한 국제사회는 이 협약으로 “근로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근로감독(노동통제) 체제를 타도하고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노동감독(노동보호) 체제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은 80년 전인 1943년 무렵의 식민지 조선과 너무나 닮아있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국가총동원을 들먹거리고 있다. 근로감독관들은 일터의 노동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공장을 감찰(inspection)하는 게 아니라, ‘노사 법치주의’ 아래 노동조합을 감찰하고 있다. 민주공화국 노동부의 노동감독관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노무관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1943년 이후 2023년까지 지난 80년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근로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조선총독부 세력의 공세에 맞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민주공화국 세력이 하루빨리 연합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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