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MWU

산별노조 교육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아시아 나라에서 지배적인 노동조합 조직 형태는 기업별노조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만 예외적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의 경우 역사적으로 업종별노조가 주를 이뤘으나(물론 단체교섭은 기업 수준에서 이뤄졌다), 1980년대 일본과 한국을 보라는 ‘Look East’ 정책이 실행되면서 기업별노조가 도입돼 업종별노조와 경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별노조가 주류였던 노동조합운동이 산별노조로 전환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이런 연유로 해외 노조간부를 위한 산별노조 교육에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제노동교육 경험을 돌아보면, 아시아 노조 간부들에게 산별노조를 교육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생각도 든다.

유럽과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산별노조가 주류지만, 둘 다 기업별노조를 경험한 적이 없다. 특히 미국은 단체교섭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업별 노사관계를 만드는 데 실패한 ‘무늬만 산별노조’의 대표적 사례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산별노조 체계로 전환한 경험을 유일하게 가진 우리나라의 사례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려는 아시아 노동운동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별노조 교육 다음날,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화학에너지광산노동조합연맹(CEMWU) 본부를 방문했다. 400여개 사업장에 조합원 17만명을 둔 CEMWU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산별연맹 가운데 하나다.

수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산별노조 교육의 가장 열렬한 참가 조직이었던 CEMWU는 지난 1월 말 한국으로 산별노조 연수단을 보내기도 했다.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연수단은 화섬식품노조, 금속노련, 보건의료노조 등을 찾아 산별노조를 공부했다.

금속노련은 산별노조는 아니지만, 연수단은 금속노련 지도부와의 토론에서 조직형태 전환의 디딤돌로서 산업별연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번 CEMWU본부 방문은 산별노조 연수단의 후속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CEMWU 지도부와 연수단이 함께한 회의에서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지도하다가 투옥된 금속노련 지도부 이야기가 나왔다. CEMWU 간부들은 김만재 위원장이 투옥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금속노련 방문 때 찍은 단체사진을 보면서 감옥에 있는 “브라더 김”이 “이 김(김만재 위원장)”이 아니라 “저 김(김준영 사무처장)”이라 알려줬다.

CEMWU 간부들은 ‘이른바 후진국’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자카르타에도 북한대사관이 있고 북한 사람들이 거주하는데, 재수 없으면 자기들도 북한 간첩으로 몰릴 수 있겠다고 농담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노동교육을 해온 지 십여 년이 지나간다. 노조 간부들의 교육 열기는 뜨겁다. 현지 노조 회의나 집회에서 늘 듣는 구호가 “Hidup Buruh”(히둡 부르)다. 우리말로 ‘노동해방’이라는 말이다. ‘히둡 부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강력한 힘이 필요한데, 그 방편 중의 하나가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임을 부정하는 교육 참가자는 이제 없다.

문제는 예산 제약으로 산별노조 교육을 일 년 한두 번밖에 진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을 위해 산별노조 교육 기회를 늘릴 방안을 찾는 것이 진짜 국제연대라는 생각이 든다.

CEMWU 지도부와 산별노조 한국 연수단은 귀국하면 금속노련에 전해달라며 전지에 매직펜으로 메시지를 적어줬다. 그리고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서툰 영어로 함께 외쳤다. “Free Kim Jun Young!”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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