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2023. 7. 25. 선고 2020가합14034 판결

1. 서론

원고들은 국토안전관리원(옛 한국시설안전공단)의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다. 본 평석에서는 쟁점을 간명하게 정리하기 위해 2명의 원고에 관한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원고들은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한 후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등에 근거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① 정규직(적어도 일반직 6급)과 동일가치노동을 수행했음에도 기본급(기준급) 및 이에 연동되는 명절휴가비를 일반직 6급보다 적게 받았고, ② 종전 입사·전환자들과 달리 무기계약직 전환 당시 종전 경력이 호봉에 반영되지 못한 채 호봉을 일괄적으로 2호봉으로 책정받았다. 이에 원고들은 ① 일반직 6급을 기준으로 한 기본급 및 명절휴가비를 지급할 것, ② 원고들의 종전 경력을 호봉에 반영할 것을 청구했다.

이 사건 판결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즉 원고들은 이 사건 청구취지변경 시점 경을 기준으로 각 17호봉, 9호봉에 해당한다고 확인받았고, ‘각 호봉을 일반직 6급 근로자의 호봉표에 대입한 급여와 실제 그간 원고들이 받은 급여의 차액’ 청구도 인용됐다.

2. 판결의 내용 및 의의

①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배에 관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간 임금차별에 대해 원고들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했다. 법원은 ① 무기계약직 근로자라는 지위 또는 고용형태가 근로기준법 6조에서 정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되, ②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배를 이유로 하는 청구를 인용했는데 ③ 판결문 말미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배를 이유로 한 청구를 모두 인용하는 이상, 사회권 규약 7조 위반을 이유로 하는 청구에 관해는 따로 판단하지 아니한다”라고 기재했다.

법원은 과거에 무기계약직 근로자라는 지위가 근로기준법 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으나, 현재 하급심 판결의 입장이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 판결은 ‘사회적 신분’의 의미를 둘러싼 여러 해석론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되는 근로규범 및 차별은 그 자체로 무효라고 판단한 의의가 있다. 이 판결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대한민국 헌법 11조1항 후문, 남녀고용평등법 8조1항, 근로 내용과는 무관한 다른 사정을 이유로 근로자에 대해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2015두46321 판결 등을 근거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판결문 말미의 기재에 관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국제규범인 사회권 규약은 헌법 6조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데, 그러한 법리를 불러오지 않더라도 이미 국내법에 의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충분히 재판규범으로서 구현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 판결은 원고들과 일반직 6급 근로자들이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한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채용자격과 인사규정에 있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점 △실제 담당 업무 측면에서 상호 업무를 인수인계한 점 △업무분장과 업무공간에 차이가 없는 점 △업무권한과 책임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업무 난이도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던 점을 들었다. 또한 원고들과 일반직 6급 간의 차별적 처우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채용절차, 승진경로 및 보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차별적 처우에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근거로는 △채용절차 차이가 그 업무 결과 차이를 낳는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고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에게 요구되는 학력과 자격 수준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이지 않으며 △원고들과 일반직 6급 근로자의 담당 업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 이 사건에서 소정근로시간을 지급하기로 정해진 기본적 급여에 해당하는 기준급과 이에 연동되는 명절휴가비에 차등을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었다.

2) 종전 경력을 호봉에 반영하지 않은 차별에 관해

피고는 그간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호봉을 정할 때 해당 근로자의 입사 전 경력을 반영해 왔다. 그런데 이와 달리 이 사건 2017년 정부 지침에 근거해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 호봉을 정할 때는 입사 전 경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들의 종전 경력을 반영하지 않고 호봉을 일괄적으로 2호봉으로 정했다.

이 사건 판결은 피고가 원고들의 종전 경력을 호봉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원고들과 종전 입사·전환자는 무기계약직이 된 시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는데 차등 대우에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17년 정부 지침에 따라 전환된 근로자들은 전환심사 대상자 모두가 전환됐던 반면 종전 전환자들은 일부만 전환됐던 차이가 있으나 “채용절차를 달리했으나 그것이 현재의 업무수행과 객관적 관련성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동종·유사한 업무에 종사하고 동일한 근로의 질을 가진다면 채용 절차의 차이만을 이유로 임금 및 근로조건에서 차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 사건 판결은 이 부분에서 2020년 노동법실무연구회 발간 <근로기준법 주해 I> 645쪽을 인용했다는 취지를 밝혔다)을 들었다. △특히 이 사건에서 호봉 차등 대우 정도도 적정선을 넘어섰다고 보이는 점 △피고가 차등대우 사유로 제시한 ‘인건비 부담 우려’는 그 자체로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할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는 점 △피고가 사유로 제시한 ‘종전 입사·전환자와의 형평성’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는 점과 채용절차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정당화 사유가 될 수 없으며, 피고가 인사상 필요와 무관하게 정부지침에 따라 원고들을 일률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됐다는 취지라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차등 대우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되는 근로계약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의사합치에 기초한 것이어도 무효라는 점이 지적됐다.

3. 소결

이 사건 판결은 무기계약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 간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위배될 경우 설령 그것이 근로자와의 의사합치에 기초한 것이었을지라도 무효라는 점, 이에 따라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임금 등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의의가 있다. 그간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명문의 규정에 의해 차별적 처우가 금지됐고 차별 시정신청 역시 명문의 규정에 의해 보장됐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명문의 재판규범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던 상황이었고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사건 판결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근거와 의미를 밝혀 법적 사각지대에 있었던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은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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