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산재보험은 우리나라 사회보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2024년이면 시행된 지 60년째다. 오랜 기간만큼 변화를 거듭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적용하던 산재보험을 특수고용직도 적용했고 최근에는 전속성 요건이 없는 노무제공자까지 확대했다. 이런 변화에도 업무상 사고·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후적으로 보상받는 산재보험 성격 탓에 보험의 효용을 느끼는 이들은 한정적이다. 사고성 재해가 아니라 업무상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질병도 늘고 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58·사진)은 지금이 10년 뒤를 내다보며 산재보험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단은 최근 산재보험 현대화(Modernization)를 추진하기 위한 ‘희망비전2030 TF’ 구성도 마쳤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박종길 이사장을 만났다. 박 이사장은 “화이트칼라 근로자나 MZ세대는 산재보험을 나와 관계없는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재보험 수혜 대상이나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할 질병을 좀 더 보편적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1987년 공직에 입문해 고용노동부 초대 근로복지과장으로 근로복지기본법 제정을 주도했다. 노동부 대변인,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낸 그는 지난 5월30일 10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다른 사회보험과 협업 고민해야 할 때”

-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다. 취임 소감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매우 중요한 조직의 수장이 돼서 영광이고, 개인적으로 감사하다. 다른 어떤 보직보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되고 싶었다.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산재보험 업무를 수행했고, 초대 근로복지과장을 맡기도 했다. 그간 쌓아 온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에 공단 구성원의 역량과 열정을 더해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안심과 안정을 드리는 공단을 만들고 싶다.”

- ‘산재보험의 현대화(Modernization)’를 강조하고 있다.
“산재보험 도입 초기와 지금 환경은 많이 다르다. 1964년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의 효시로서 등장할 때 다른 보험은 없었다. 이후 건강보험·고용보험·국민연금이 도입되면서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꽤 생겼다. 사회보험 간 분업과 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질병은 업무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런 점에서 건강보험과 분업·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 산재보험의 일반화, 보편화를 강조한다.
“산재보험의 일반화, 보편화가 필요하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계속 확장돼 왔다. 2022년 기준 2천80만명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 신규로 산재를 인정받아 급여혜택을 받은 사람은 14만명이다. 이전에 승인을 받아 계속 혜택을 받는 이들은 39만명이다. 수혜율이 낮다. 화이트칼라 근로자나 MZ세대는 산재보험이 나와 관계없는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산재보험이 이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혜 대상이나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할 질병을 더 보편적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2030을 포괄하기 위해 산재보험의 관점을 바꿔 예방적·사전적 치유 개념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현대 질병, 질병 전 단계인 고혈압, 고지혈증, 업무상 스트레스 등이 드러나면 특별검진을 받게 한다든지, 건강보험과 함께 약제비를 지원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산재보험을 일하는 사람의 보편적 권리로”

- 올해 7월1일 개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시행됐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대신 노무제공자라는 정의를 가져왔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노동관계법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선진적인 것이 산재보험법이다.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근로자로 인정하지만 산재보험의 경우 특수고용직뿐만 아니라 전속성이 없는 분들까지 적용한다. 이번 7월1일 조치로 대부분 일하는 분들이 산재보험 제도에 포함된다고 본다. 물론 일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연구를 지속해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 즉시 확장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산재보험의 특성을 사업주와 피용자라는 개념으로 가져가다 보니 확장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공무원, 사업주도 산재보험에서 빠져 있다. 사업주가 자본가라는 18세기 개념에서, 사업주가 피용자에게 시혜적으로 (사업주 귀책이 없어도) 무과실 책임을 지는 원칙에서 산재보험이 이뤄지다 보니 확장성의 제한이 있다. 일하는 사람의 보편적 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이 나아가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권리로 접근하면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부분들도 쉽게 풀릴 수 있지 않겠나.”

산재 인정 지연 지적에 “일부 업무 외부에 맡기고 처리 절차 단순·효율화할 것”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 산재보험법은 ‘신속하고 공정’ 처리가 필수다. 하지만 산재보험 처리 지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산재신청 건수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고 업무상 질병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업무상질병이 전체 산재 처리건 중 7.3%였는데, 2022년 13.3%로 늘었다. 업무상 사고, 부상은 처리 기간이 오히려 줄었는데 업무상 질병은 업무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소음성 난청·근골격계질병은 진단 확인 등을 위해 특별진찰이 필요하고, 직업성 암은 유해인자 노출 및 존재 여부 확인 등을 위한 역학조사로 처리 기간이 장기간 소요되고 있다.

산재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확충하려 한다. 특별진찰은 현재 근로복지공단 소속병원에서 하고, 역학조사는 직업환경연구원·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하는데 과부하 상태다. 일부 업무를 외부에 맡기고, 업무처리 절차를 단순화·효율화하려 한다.

직업성 암 등 질병은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간의 사례나 문헌 등으로 확인되는 경우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 산재보험제도를 건강보험처럼 ‘선 보장 후 정산’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근간을 손대는 부분이라 제도를 바꾸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재보험법은 업무적인 사유에만 보상한다고 돼 있다. 업무연관성이 확인 안 된 상황에서 먼저 보상하고 환수하자고 하는데, 환수가 쉽지 않다. 국회나 국민적 합의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 다른 대안이 있나.
“개인적인 의견으로 부분 보상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산재보험제도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이다. 현재는 업무연관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되는 구조다. 그래서 치열한 법리분쟁이 발생한다. 이 문제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산재신청 추세가 업무상 사고에서 질병·건강으로 바뀌고, 국민과 근로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업무연관성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산재 인정에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공단 직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의학적·과학적 분야기 때문이다. 저는 특정 질병에 대해서는 (산재 인정을) 포괄적으로 넓히고 어느 정도 관계가 인정되면, 유해·위험한 작업환경과 노출 기간으로 우선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요건을 충족하면 치료를 받게 하되 휴업급여 같은 경우는 혜택을 줄이는 등 중간수준의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물론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복지도 양극화
구휼적 복지 아닌 보편적 복지 돼야”

-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업무도 수행 중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듯하다.
“현재 공단은 굉장히 많은 근로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생활안정자금을 대출해 준다거나, 임금 체불이 발생한 경우 대지급금을 준다든가, 직장 보육시설에 대한 설치비·운영비를 지원해 준다. 37개 공공어린이집도 공단이 직접 운영한다. 근로자가 콘도 회원 가격으로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콘도사업도 한다.

사업들은 다양한데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다. 재원도 적다. 근로복지사업은 근로복지진흥기금에 의존하는데 연간 600억원 정도다. 로또복권의 수익금에서 나온다. 이 재원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정부와 많은 분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득을 해서 재원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공단이 근로복지사업을 왜 확대해야 하나.
“최근에 노동시장을 보면 노동력을 상실하지 않고 노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노동시장 양극화 때문에 생활이 불안하거나 어려운 계층이 있다. 개별 중소기업의 부가가치 능력 등을 보면 이런 근로자들을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면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공단의 미션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산재보험으로 안심하고 일하고, 근로복지를 통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근로복지 사업을 키워 구휼적인 제도가 아니라 누구든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복지는 대부분 구휼적인 것들이다. 생활안정자금 융자가 공단의 대표적인 상품인데, 자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저리로 빌려준다.

근로복지카드를 생각하고 있다. 근로자 본인과 사업주, 정부 등이 돈을 내 (가령) 3년 동안 얼마를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책을 사든, 콘도를 이용하든 중소기업·저소득 근로자들의 복지를 충족해 주는 것이다.

콘도사업 같은 게 왜 필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Decent Life(안정된 삶)'를 위해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복지수혜 대상을 영세근로자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까지 포함한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한다.”

- 2030년대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희망비전2030TF’를 꾸렸다.
“1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려 한다. 산재보험과 근로복지사업의 수혜대상을 2030세대까지 확대하고, 공단 구성원 50%에 달하는 2030세대가 신나게 근무할 수 있는 조직문화 형성하는 등 조직 전반의 혁신을 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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