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릭스

15차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담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샌드턴에서 열리고 있다.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직접 오지 않고 화상으로 참가한다.

푸틴을 빼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디아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직접 참가한 이번 회의와 관련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관심이 쏠린 쟁점은 탈달러화(de-dollarization)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는 “브릭스 국가들이 서방 패권의 상징인 달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은행들의 해외 거래망인 SWIFT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고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자, 신흥경제국들에서 탈달러화에 관심이 커졌다.

지난 3일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브라질이 중국과 아르헨티나와 무역을 하는데 왜 달러가 필요한가? 우리는 우리 돈으로 무역을 할 수 있다”면서 브릭스 국가들이 공동 통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러시아는 중국 돈인 런민비를 받고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고 있다.

이번에 브릭스가 공용 통화를 채택한다면, 이는 달러가 사실상 독점한 국제 통화 체제를 “다양화”(diversification)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달러에 기반한 미국과 서방의 패권체제라는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결제수단을 달러 독점에서 여러 통화로 다양화하려는 것이다.

브릭스는 ‘동맹체’가 아니라 ‘협력체’다. 당연히 5개 회원국은 국제 문제에 단일한 입장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국제 통화 체제의 개혁은 글로벌 수준에서 달러를 대체하는 통화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우선 브릭스 5개국 사이에 무역 결제수단을 만드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국 런민비(renminbi), 러시아 루블(ruble), 브라질 헤알(real), 인디아 루피(rupee), 남아프리카공화국 란드(rand) 등 브릭스 5개국의 화폐명은 모두 “R”로 시작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R5”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제 통화가 논의된다.

회담의 또 다른 중요 의제는 회원국 확대다. 현재 정식 회원국은 5개국이지만, 남반구를 중심으로 참가를 희망하는 국가들이 급증하고 있다. 국제사회 요구를 반영해 ‘브릭스 플러스’(BRICS+)라는 형태로 더 많은 나라가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구조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략 40개국이 브릭스 가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을 통한 서방의 글로벌 지배로부터 피해를 본 나라들이다. 지금 필자가 출장을 와 있는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위도도 대통령도 지난 20일 아프리카로 떠났다. 공식 일정은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국 순방이지만, 진짜 목적은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이다.

세계사의 대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 일본, 유럽은 보름달을 다 채우고 기우는 중이다. 반면에,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신흥 대국들은 반달을 지나 이제 보름달로 차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기에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공장법 시절”인 1950년대에 구상된 ‘아시아판 나토(NATO)’의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미일한 군사동맹’의 부하를 자처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보이는 그의 행보는 망하는 명나라를 숭배하다가 백성을 전쟁의 화마로 몰아놓은 17세기 초의 조선 임금 인조를 떠올리게 한다.

북반구(the Global North)의 개들이 짖어도 남반구(the Global South)의 열차는 달리고 있다. 북반구 국가들의 방해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남반구 국가들은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열어젖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선두에 브릭스가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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