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 공인노무사(노무법인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7월30일 경기 안양 인덕원을 출발해 서울 마포까지 이동을 했다. 운전을 시작할 무렵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56분 [경기도청] “강한 소나기구름이 경기 남서부에서 북서부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하천변 및 계곡에서 즉시 이동하시고 반지하 거주자는 침수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비게이션은 과천을 지나 사당, 올림픽대로, 여의교 지하차도, 양화대교를 거치는 경로를 안내했다. 남태령 고개를 넘을 무렵 예사롭지 않게 비가 내렸다. 오후6시28분 [행정안전부] “오늘 18시25분 서울(서남권) 호우경보, 산사태, 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 자제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사당역을 지나 올림픽대로에 접어들 무렵 와이퍼가 최대치로 작동하는 데도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에 차량들은 더디게 이동했고, 일부 도로에는 물이 고이고 차량이 지날 때 타이어 옆으로 거센 물줄기가 퍼져 나갔다. 도로 상황은 삽시간에 변했다. 오후 6시57분 [서울시청] “19시20분 현재 서울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면 즉시 지상으로 대피하세요. 차량 확인을 위한 진입도 자제해 주세요”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한강대교를 지날 무렵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여의교 지하차도에서 양화대교 방향으로 빠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폭우로 변화된 도로 사정을 즉각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문득 얼마 전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떠올랐다. 굳이 위험하게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여의교 지하차도를 이용하기보다는 계속 직진하다가 성산대교를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몰라 지갑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여차하면 차를 버린다’고 다짐하는 사이 몸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바짝 당겨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여의교 지하차도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차량 통제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고, 형광색 우의를 입은 경찰관이 경광봉을 연신 흔들고 있었다. 경찰이 도로통제를 하는 상황을 보고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던 낯선 경험의 순간이었다. 1시간30분가량 폭우 속에서 운전은 참혹했던 참사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달 15일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1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미 2020년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참사로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는 사고를, 2022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9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경험했었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허술한 관리와 부실한 대응이 빚어낸 인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에 대한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한 ‘중대시민재해’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같은달 20일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기자회견을 통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며 하천·도로를 관리하는 환경부 장관·충북도지사·청주시장·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행복청장) 등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적용된다.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자체장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관련법에 따라 연장 100미터 이상인 지하차도, 국가하천의 제방 등은 공중이용시설로 분류되며,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공중이용시설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해 발생한 재해라는 점에서 중대시민재해 1호 사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같은달 31일 경향신문은 “재난 발생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자연재해라서 정부 책임이 아니며, 문제의 원인과 배경은 모두 전 정권에서 비롯됐고, 그렇기에 사과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탓인지 행정부는 물론 지자체장들의 설화도 여기저기서 터지지만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재난과 비극의 원인과 배경이 무엇이든 이를 정치적 기회로 삼는 것도 특징이다”라고 꼬집었다.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도했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원인과 책임주체들의 책임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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