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정당의 구성, 등록 요건, 해산 절차, 신고 등을 규정한 법규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에 정당 관련 규정은 없으며, 연방 법률도 마찬가지다. 반면, 1939년 제정된 ‘악성정치활동금지법(An Act to Prevent Pernicious Political Activities)을 통해 연방정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규제한다. 이 법은 당시 법안을 제안한 상원의원 칼 해치(Carl Hatch)의 이름을 따 해치법(Hatch Act)으로도 불리며, 2012년이 가장 최근 개정된 해다.

엽관제의 부패와 폐해를 바로잡아 정치를 정화하기 위한 이 법에서 말하는 정치행위 금지는 상급자나 정치가의 공무원에 대한 정치행위의 강요를 금지한다는 의미에 사실상 공무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를 제한하면서도 “연방 직원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투표할 권리와 모든 정치 문제와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해 선거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의견을 말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리고 1993년에 연방 공무원에게 근무시간 이외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연방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일반시민과 동등한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게 됐다. 주와 자치단체의 공무원도 연방과 같은 법제가 있으며, 1980년대에 들어 절반을 넘는 주에서 근무시간 외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고 있다.

해치법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은 당파적 정치활동을 비롯한 개인활동과 정부에 대한 의무를 뒤섞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 연방정부 자산 밖에서 연방정부의 시설과 자원을 이용하지 않는 조건하에 “광범위한 당파적 정치활동(a wide range of partisan political activities)”에 관여할 수 있다.

해치법에서 말하는 당파적 정치활동이란 “당파적 정무직(a partisan political office)을 위한 후보, 정당, 당파적 정치단체의 성공이나 실패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당파적 정치활동에 관한 일반 규칙은 “일과 중 연방정부 근무지에서 연방정부의 자원(컴퓨터, 휴대전화, 이메일 등)을 이용하거나 또는 연방정부 직원으로 식별되는 조건(공무원을 알리는 복장이나 표식 등의 착용)에서 당파적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준수하면 공무원의 당파적 정치활동은 허용된다.

연방정부 공무원은 정치자금 모금행사에 참가할 수 있으며, 정치헌금(political contribution)를 낼 수 있다. 또한 소셜 미디어에서 정치자금 모금자에게 “참석” 혹은 “관심” 등의 반응을 할 수도 있다.

연방정부 공무원은 부하직원을 제외한 동료 조합원에 정치헌금을 간청하거나 기부받을 수 있다. 물론, 연방정부 공무원은 겸직으로 연방직(하원)에 출마할 수 없으며, 정당이 후보를 지명하는 당파적 선거에 후보에도 겸직으로 출마할 수 없다. 반면에 연방 공무원은 비당파적 선거에는 출마할 수 있는데, 비당파적 선거란 출마 후보들이 정당 소속에 의해 좌우되지 않은 선거를 뜻한다.

주정부 공무원의 경우, 주에 따라 연방정부 공무원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은 정치적 자유를 누린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정부 공무원은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정치자금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 이때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이나 직함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근무지 이외의 장소에서, 주정부 재산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하에 정치 캠페인에 참가할 수 있으며, 캠페인용 뱃지나 정치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근무시간 중에 입을 수 있다. 또한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근무지 이외의 장소에서 개최되는 정치적 집회에 참가할 수 있다. 개인차량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를 달고 주정부 주차장에 주차할 수도 있다.

미국이면 뭐든 좋다며 따르는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의 현실은 어떤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가장 초보적인 권리인 정당에 가입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상태다. ‘정치적 중립화’를 빙자한 ‘정치적 중성화’는 대한민국 공무원을 민주공화국의 공무원이 아닌 조선총독부의 고용원으로 여전히 발목 잡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공무원에게 필요한 덕목은 ‘정치중립’이 아니라 ‘행정중립’이 아닐까.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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