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전태일재단은 말이든 글이든 전태일 이름 뒤에 열사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대신해 41년을 올곧게 실천하다가 그 곁으로 떠난 어머니 이소선의 유지다. “태일이는 분신해서 죽어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열사라고 하면 옆에 두는 것이 더 어렵다. 태일이를 저 하늘에 두지 말고 이 땅에다 둬라. 열사라고 하지 말고 그냥 전태일이라 하든지 형, 오빠, 삼촌이라 불러라.” 이소선은 누구나 편하게 아들 이름을 부르며 전태일 정신이 넓고 깊게 확산하기를 희망했다.

2020년, 그러니까 3년 전 전태일 50주기부터였다. 전태일재단은 재단 위상을 ‘기념’재단에서 ‘운동’재단으로 전환했다. 죽은 전태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기념재단에 머물지 않고, 산 전태일이 고뇌하며 이루고자 했던 염원을 이 땅의 현실에서 실현하는 운동재단으로 사업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전태일재단이 그렇게 실천해야 전태일과 이소선에 대한 사회적 추모와 기억도 더 오래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일기와 평전을 통해 확인하는 전태일의 심성은 측은지심이었다. 무한한 사랑과 연대가 전태일 정신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었다. 불굴의 실천, 풀빵 나눔, 모범업체 구상의 배경이기도 했다.

전태일은 자신도 어려운 처지였지만, 자신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실천하다가 산화한 것이 아니다. 전태일의 시선은 자신보다 어려운 시다와 미싱사에게 있었다. 전태일은 가진 것이 많아서 배곯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준 것이 아니다. 호주머니에 있던 30원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1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퇴근해야 하는 버스비 전부였다.

전태일재단은 측은지심, 사랑과 연대, 불굴의 실천, 풀빵 나눔, 모범업체 구상 등 전태일의 정신이 한국 사회에 넓고 깊게 확산하길 희망한다. 아들 뜻에 따라 남은 반평생 41년을 늘 한결같이 사회 밑바닥의 손을 잡은 이소선 정신도 함께 퍼지길 바란다.

당면 시기 전태일재단이 집중하는 전태일운동은 불안정노동의 조직화 및 조직화 지원이다. 전태일재단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및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과 함께, 전통적 방식으로는 조직할 수 없거나 성과를 낼 수 없어서 노조가입률 0.5%에 미치지 못하는 2천만명에 대한 새로운 조직화 방식으로 노동공제운동을 펼치고 있다. 노동공제연합 풀빵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

아울러 전태일재단은 봉제, 제화, 라이더, 대리운전, 방송작가 등 불안정노동 단위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의 핵심은 재정이다. 노조 이름을 걸었든 공제회 이름을 걸었든 불안정노동 단위가 조직해야 할 대상은 무궁무진한데 재정 빈곤 때문에 늘 힘겨워한다. 그런 단위들이 전태일재단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재단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재단 형편이 좋아서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전태일재단은 매달 후원회비만으로는 기본 운영도 안 되는 구조다. 그렇게 늘 쩔쩔매면서도 불안정노동 조직화와 지원에 매진하는 것은 바로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버금가는 불평등 국가로 전락한 대한민국 밑바닥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며, 내수와 국내총생산(GDP)에도 기여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사회의 한 주체로 당당하게 조직돼야만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였다. 전태일재단은 지난 6월15일, ‘태일이네 문을 열다’라는 이름으로 후원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뜻에 공감한 개인과 노조·단체·기업 등이 참여했고, 특별후원금으로 1천원부터 1천만원까지 총 8천630만9천111원이 모였다. 전태일재단은 특별후원금 전액을 후원자 모두의 이름으로 불안정노동 단위 조직화 사업에 지원하겠다는 사회적 약속대로, 8천700만원을 채워서 권리찾기유니온, 노동공제연합 풀빵, 대리운전노조, 이음나눔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 청년유니온, 봉제인공제회, 사회복무요원노조, 이주노조, 카부기공제회, 학습지노조, 도심제조연대, 민주일반노조 제화지부에 지원하기로 했다.

전태일재단 후원의 날을 계기로 212명의 개인과 21개의 노조·기업이 정기 후원회원에 신규로 참여했고, 기존 후원회원 24명이 후원금 증액에 동참했다. 특별후원금으로는 개인 305명, 단체와 기업 52곳, 노조 41곳이 참여했다. 가수 정태춘과 MBC아나운서 이선영 등 9명은 재능을 기부했다. 전태일과 이소선 이름으로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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