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노총(VGCL) 친구한테 온 전화에 잠을 깼다. “슬픈 소식이야. 윤영모가 세상을 떠났어.” 국제노동기구(ILO) 베이징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던 윤영모는 그렇게 작별을 고했다.

처음 그를 본 때는 민주노총 시절이다.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국장 신은철이 그만두게 됐다. 호주로 이민을 갔다 귀국해 대학원생으로 있던 윤영모가 국제국을 맡게 됐다.

1996~1997년 겨울을 휩쓸던 총파업에 국제노동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국외에 알리고 국제연대를 끌어내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민주노총이, 한국 노동운동이 국제노동계에서 이만큼 자리잡은 데에는 윤영모의 공이 크다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 아니냐.”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 보낸 문자에 세밑 명동성당의 추위를 함께 견딘 ‘총파업 동지’를 향한 애절함이 묻어났다.

출범 때부터 민주노총은 남아프리카·브라질 노총들과 ‘3국 연대’를 진행했다. 국제노동운동가 피정선이 숨은 역할을 했다. 네덜란드노총(FNV)과 독일 에버트재단(FES)의 지원을 받아 민주노총,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 브라질 노동자통일중심(CUT) 3개 조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남반구(Global South)가 추동하는 국제연대를 시도했다. 윤영모는 서울에서, 요하네스버그에서, 상파울루에서,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에서 3국 연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먼발치서 바라보던 그의 활동에 호흡을 맞춘 때는 민주노총이 단병호 위원장 시절인 2001년 11월 주최한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 서울대회였다. 호주·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인도네시아·필리핀·파키스탄 등의 좌파 노조들이 주축인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선진국 중심의 북반구에 대비되는 남반구 중심의 조직이었다.

14개국에서 200여명이 참가한 서울대회는 11월5~11일 한국노동교육원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이 큰 일을 하니, 가서 윤영모 국장을 도와주라”는 당시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외 참가자들과 숙식을 함께했다. 당시 한국노동교육원 노조위원장 여상태를 중심으로 교육원 직원들과 함께 대회의 2선을 챙기며 1선의 윤영모를 지원했다.

2003~2008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노동센터장으로 일하던 윤영모는 2009년 무렵 ILO 하노이 사무소에서 ‘노사관계 선임전문가’를 맡았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베트남에서 국제노조의 교육사업을 진행하던 참이었다. 그가 살던 하숙집에 며칠 신세를 지며 인근 맛집에서 쌀국수와 장어찜을 얻어먹었다.

ILO와의 협력 속에 베트남 정부는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고, 2019년 7월 단체교섭권 협약 98호를, 2020년 7월 강제노동철폐 협약 105호를 비준했다. 그 배경에 ILO 하노이사무소장 이창휘와 윤영모의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당지배 국가인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윤영모의 ILO 베이징사무소 활동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지만, 내가 중국 경험이 없어 그의 베이징 활동을 가늠하기 어렵다. ILO 베이징사무소는 몽골을 관장했고, 윤영모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팀과 함께 몽골 노동부의 임금체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때마침 몽골광산에너지노조연맹을 상대로 교육사업을 진행하던 나는 섭씨 영하 35도의 늦은 밤 울란바토르에서 그와 연구팀을 만나 맥주잔을 앞에 두고 몽골의 노동문제를 논했다.

그와의 마지막 대면은 몇 해 전 설날 즈음 그의 딸 장례식장에서였다. 대학교 입학을 며칠 앞둔 아이가 황망히 부모 곁을 떠났고, 자식 잃은 아비 앞에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윤영모와의 인연을 돌아보며 그의 활동을 짚어 보니 “제3세계”와 “남반구”가 눈에 띈다. 노동운동가로서 그는 민주노총이 제3세계와 남반구 노동운동의 일부라 믿었다. ILO 전문가로서 그는 베트남과 중국이 글로벌 노사관계의 발전에 중요하다고 믿었다.

2001년 남반구노조연대회의 서울대회의 목적을 두고 “제3세계 노동운동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북반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남반구와 함께하는 노동운동. 이것이 그와의 이별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굿바이 영모형.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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