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보험 고객을 섭외하고 보험설계사의 스케줄을 예약하는 보험대리점 상담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회사는 근로자성을 피하려고 채용공고에 기본급 삭제를 시도하고 급여의 명칭을 수당으로 변경하는 꼼수를 썼지만, 법원은 회사에 종속돼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라고 명확히 했다.

4년 넘게 일했는데 사업자? 퇴직금 미지급
구인광고에는 급여조건·업무내용 명시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보험 콜센터 상담원 A씨가 보험대리점(GA) B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회사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사는 A씨에게 퇴직금 1천2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A씨는 2015년 3월 입사해 B사의 부산 센터에서 보험계약체결 상담 업무를 하다가 2019년 7월 퇴사했다. 회사가 섭외 고객의 범위를 지정하면 A씨가 전화로 섭외해 보험설계사의 방문 스케줄을 예약하는 방식으로 일했다. 그런데 회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자 2020년 1월 퇴직금과 지연이자를 달라며 소송을 냈다.

사측은 “A씨는 보험계약 모집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보험모집인”이라며 “위임계약을 체결한 독립적인 사업자일 뿐, 임금을 목적으로 회사에 종속돼 지휘·감독을 받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독립적인 사업자 C사에 보험계약의 체결·중개를 위임했다며 A씨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1·2심은 A씨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구인 광고에 사업장이 부산 센터라고 명시돼 있고, 급여조건(월 기본급 150만원~230만원)과 업무내용(간단한 스케줄 예약업무 및 전산업무)이 공지된 부분이 근거가 됐다. 계약의 실질은 근로계약이라는 의미다.

급여를 ‘수당’ 둔갑, 기본급 삭제 요구도
법원 “회사가 업무 결정, 형식 조치 불과”

특히 B사가 외관상 근로계약을 피하려고 시도한 ‘꼼수’를 질타했다. 회사는 2017년 12월까지 ‘급여’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다가 2018년 1월부터 명칭을 ‘수당’으로 변경했다. 재판부는 “이는 A씨의 종전 근무 방식이 유지됐던 것을 볼 때 형식적 조치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회사가 채용공고에 있는 ‘기본급’을 삭제할 것을 인사담당자에게 요구하는 등 구인 과정에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업무 내용도 사실상 회사가 정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회사가 섭외 (고객) 대상 범위를 지정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A씨의 업무는 회사에 의해 정해졌다”며 “A씨가 보험설계사를 선정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센터장이 메신저를 이용해 실적 현황이나 스케줄 확보건수를 전산시스템에 입력한 후 퇴근을 공지하는 방식 역시 근로자성을 뒷받침했다. 출근일수도 급여 산정에 반영됐다.

A씨가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한 점을 두고도 재판부는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이 같은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보험모집인’에 해당한다는 사측 주장에 관해서는 “A씨는 2015년 3월부터 업무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해 12월 보험모집인으로 등록됐으므로 등록 여부가 업무 수행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