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드라망

2007년 겨울이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하청업체 폐업을 앞두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과 대응투쟁을 논의했다. 폐업은 말뿐 바지사장만 바뀌는 것인데, 조합원들의 근속과 연월차가 모두 사라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다른 사내하청업체들이 폐업을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전례를 여럿 봐온 터라 불안했다.

전면파업을 하기로 했다. 언제 파업하고, 어디서 모이고, 경비가 와서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면 다시 집결하는 장소는 어디고, 현장 판단을 누가 할지, 다른 업체 조합원들은 어떻게 결합할지 끝없이 이어지는 논의를 끝내고 뒤풀이를 하며 술을 왕창 먹었다.

“누나. 나, 구속결의 할 수 있어요. 이번에 라인 세워서 징역살면, 살고 나오면 되지. 그거 별거 아녀. 누나 말이 다 맞아. 근데, 이렇게 하면 노동자들이 잘사는 좋은 세상은 언제 와?”맞은편 후배 말에 술이 번쩍 깼다. 노동자들이 잘사는 좋은 세상이 언제 오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문득 너무 미안했다.

노동자들이 잘사는 세상이 언제 오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반복해서 투쟁을 조직하고, 반복해서 열사의 이름으로 동지를 가슴에 묻었다. 하필이면 우리 싸움의 상대는 현대차였다. 그에 비해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지위는 비천하고 힘이 없었다. 2013년 박정식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이 죽어 열사가 됐다.

‘이미 가슴에 묻은 열사가 한둘이 아닌데, 이제 내 가슴은 묘지구나.’

손 탁탁 털고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죽은 정식이 때문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상을 뒤엎으며 울고, 미안하다고 울고, 다 죽여 버리겠다고 울고, 몸 안에 있는 모든 수분을 눈물로 쏟아 우는 동지들을 보며 떠나지 못했다. 장례를 치른 후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무덤을 품어 묘지가 된 가슴으로 어떻게 삶을 살까.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쉬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이 널을 뛰다가, 끝없이 졸리고, 미친 듯이 짜증이 나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던 어느 날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으로 갔다.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정말 안 좋은 귀정사. 한 달쯤 있을 계획이었는데 미루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 2주 정도 머물렀다.

거기서 밤을 보았다.

인드라망
인드라망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밤. 나무 냄새로 머리를 감는 밤. 졸졸 시냇물 소리에 발길이 붙들려 두려움 없이 멈추어 돌아보는 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다정한 밤. 저 멀리 있는 별들에 내 얼굴을 비추는 밤. 밤을 이불처럼 덮고 숨을 쉬었다. 그래, 숨은 이렇게 쉬는 거였어.

노동자들이 잘사는 세상이 언제 오냐고 나에게 물었던 후배는 그 질문을 하고 며칠이 지난 후 라인을 세웠다. 해고됐다. 그리고 10년을 넘게 싸웠다. 몇 달 전 대법원에서 승소해 지금은 현대차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복직하기 며칠 전 술을 산다며 뭐가 먹고 싶냐고, 뭐든 비싼 거 먹으라고 큰소리치는 후배에게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노동자들이 잘사는 좋은 세상이 언제 오는지 모른다. 다만 살다가 숨을 쉬기 어려워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안다. 나의 쉼터 인드라망, 나의 별, 나의 동지들께, 나처럼 미련하게 살아 숨쉬기 어려워질 때까지 참지 말고, 언제든 대중교통 안 좋은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으로 가서 숨을 쉬시라고 권한다. 거긴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우는 우리 모두의 안식처.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실컷 먹고 자고 멍 때리며,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며 잠시 가쁜 숨을 내려놓으라는 고마운 곳.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우는 우리 모두의 안가이자 야전병원이자 별장인 곳.

그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열린 지 벌써 10년이다. 가수 정태춘님이 인드라망 10년을 맞아 9월2일 연대운영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콘서트를 열어준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가 깃들이는 우리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만나자. 이 기회에 혹 조금 넉넉한 동지들은 지갑을 열어 부디 넉넉히 후원도 하시라고 부탁드린다. 내 덕에 동지가 살아 안 먹어도 배부른 마음이 가느다란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드라망의 힘, 밤의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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