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 저자
강남규 저자

축구를 즐겨 보는 사람은 많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 사람도 많다. 좋아하는 팀이 있는 사람도 물론 많다. 그중 외국 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국내 팀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보다는 적다. 국내 팀 중에서도 내 지역에 있는 팀을 좋아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 부끄럽지만, 나부터가 수원에 살지 않는데 K리그 수원삼성을 응원하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젠가. 사실 딱히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내 지역에 있는 팀을 응원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의 ‘프로함’을 중화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이 얘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하자.

‘프로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실력 중심의 세계.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이 절대적 규칙인 세계. 내 지역에 있는 팀이 아니라면 어떤 팀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대개 실력과 유명세고, 이렇게 좋아하게 된 팀은 그 팀의 실력이 떨어질수록 점점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팀이 강등에 강등을 거듭하고 백날 희망고문만 해도 끝까지 그 팀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의 경쟁심과 승부욕을 팀이 대신 해소해 주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프로 스포츠의 작동원리이기에, 지기만 하는 팀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죽어도 선덜랜드, 지문 같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그러나 지역팀은 어떤가. 지든 이기든 내 지역팀이다. 내가 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한, 저 팀을 버리게 될 일은 거의 없다. 하도 져대는 통에 냉담자처럼 팬심이 얼마간 얼어붙을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도 멋진 경기 한 번 보이면 금세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 지역팀을 응원하는 일이다. 그 충성심, 그게 곧 지역 축구팀을 응원하는 일의 본질이다. ‘프로’는 이 본질을 끊임없이 훼손하려 들지만, ‘지역’은 그 공세를 기어이 방어해 낸다. 오늘날 프로축구는 이 묘한 경계에서 가느다란 낭만의 불꽃을 이어 가고 있다.

지역팀이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이러는가. 사실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 감정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K리그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구단 중 그 역사가 가장 긴 구단은 포항스틸러스인데, 1973년 창단했다. 올해로 딱 50주년. 부산아이파크와 울산현대가 40년 정도로 그 뒤를 따르고, 대부분은 30년 미만의 역사를 갖고 있다. 100년 역사는 취급도 안 해 주는 유럽 축구팀들에 비하면 역사가 짧은 편이고, 프로축구의 위상도 유럽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그리고 뒤에서도 언뜻 얘기하겠지만 한국은 ‘지역 커뮤니티’가 상대적으로 별로 조직돼 있지 않다. (여기서 할 얘긴 아니지만, 노동계급 정체성 문제와도 유관한 지점이 있다.) 그러니까 지역팀의 특별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려면 우리는 유럽팀 이야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이야기도 분명 재밌을 거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는 오랫동안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돼 있다가 2부 리그인 챔피언십으로 강등된 선덜랜드 AFC의 승격 도전기(시즌1)와 승격은커녕 3부 리그로 강등돼 허덕이는 이야기(시즌2)를 아주 가까이에서 담아 냈다. 이 다큐멘터리가 다른 축구 다큐멘터리들과 비교해 특별한 것은 축구경기만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카메라는 축구라는 산업을 이루는 구석구석의 노동을 들여다본다. 선수들에게 오래 식사를 만들어 온 조리사, 지역 지지자들에게 표를 판매하는 매표원 같은 노동들. 감독도, 코치도, 스카우터도, 이 다큐멘터리 카메라 앞에서는 ‘축구 노동자’가 된다.

과감하게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 지역을 비추기도 한다. 선덜랜드 AFC의 지지자들은 2부 리그로 추락한 팀을 놓아 버릴 수가 없다. 서울에 사대문이 있는 것처럼, 선덜랜드에는 선덜랜드 AFC와 이들의 경기장이 있는 것이다. 경기장 이름은 ‘빛의 구장(Stadium of light)’, 과거에 광산업이 지역 경제의 기틀을 이뤘던 선덜랜드 지역의 역사가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기장 서쪽 게이트 앞에는 광산노동자 가족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역 지지자들은 일요일이면 교회에 모여 ‘선덜랜드 AFC의 승리’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장례식에는 수의 대신 유니폼을 입은 시신이 자리를 잡는다. 아버지와 경기를 보러 왔던 사람이 자식들의 손을 잡고 경기를 보러 온다.

지지자들, 프로를 중화하는 방식

K리그 유튜브 갈무리
K리그 유튜브 갈무리

이 지지자들에게 선덜랜드 AFC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그 자체이자 손가락의 지문 같은 것이니,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팀을 내칠 수는 없는 일이다. 경기를 보고 있을 땐 복장이 터지고 감독과 선수들에게 욕을 쏟아붓고 당장 팀을 해체하라고 소리치지만, 그래도 결국 ‘죽어도 선덜랜드!’ 이 문장은 이들에게 거창한 응원구호가 아니라 건조한 팩트일 뿐이다. 아마 이들에게 왜 더 잘하는 팀을 응원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거다. “아니, 내가 팀이고 팀이 나인데, 이걸 어떻게 바꿔요?” 이게 바로 지역이 프로를 중화하는 방식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역이 자본주의의 방파제다. 자본의 논리가 온 세상을 지배한 시대에 그 자본의 최전선인 프로의 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늘 놀랍다.

앞서도 ‘지지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축구팀을 사랑하는 팬들은 스스로를 지지자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프로축구가 협업과 연대의 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티켓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엔터테이닝을 제공하는 판매자의 관계가 아니라, 선수들이 앞에서 뛰고 지지자들은 뒤에서 떠받치는 동반자의 관계. 지지자들은 구단이 그들을 소비자로 취급할 때 거세게 항의하면서 기어이 항복을 받아 내는 존재다. 프로축구라는 세계는 이토록 다면적이다. 그리고 그 다면성은 지역과 지지자들이 능동적으로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게 내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이고, 특히 K리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원한다면 언제든 경기장에 방문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 K리그 붐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올해 K리그1 전반기 누적 관중은 118만명, 역대 최다란다. 지금 바로 K리그 붐에 올라타시라. 지역과 함께 호흡하면서 ‘우리 팀’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는 지지자가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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