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2019년 한국 밴드와 영국 투어를 마치고 입국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이런 소리를 했다. “근데 도연씨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일하는 모습은 맨날 놀고 있는 것처럼 즐거워 보여요.”

살짝 놀랐고,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일터가 공연장이나 페스티벌 또는 투어 중 여행지다 보니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항상 재밌어 보였던 것 같다. 필자는 음악가들의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대중에게 선보이는 공연기획자다. 이런 직업을 프로모터(Promoter)라고 부른다. 페스티벌·단독공연·기획공연·투어 같은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기획해 봤고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음악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한 번의 음악 공연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공연을 위한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무대에는 적정한 음향과 조명 시스템을 구비해야 하고, 관중을 모으는 만큼 철저한 질서와 안전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관객의 입·퇴장 동선부터 짐 보관소·화장실·응급센터 같은 시설도 중요하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음악가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해 일정을 조율하고 공연장을 예약하며 티켓을 홍보·판매하며 (해외 아티스트의 경우) 비자를 발급받는 것 등의 업무를 모두 완료해야 한다. 기획자란 이름에 실행이나 구현 같은 단어를 포함한 셈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았더니 음악과 거리가 생겼다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남겨두고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직업에 관한 유명한 조언이 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전과 달리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음악이 좋아해서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필자도 그렇다. 라이브 음악이 좋아 홍대 공연장을 누비다 만난 영국인 파트너와 뜻이 맞아 한국의 밴드음악을 국문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음악 웹사이트를 함께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는 홍대의 작은 펍에서 시작한 공연 기획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수천명이 관람하는 대형무대를 기획하는 프로모터가 됐다.

라이브 공연을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삶에도 변화도 생겼다. 안타깝게도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아주 작아졌다. 직접 제작하는 공연이 아님에도 공연장에 가면 일하는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공연이 주말에 열리는데, 주중 내내 음악과 공연 관련 업무를 하고 주말에도 공연을 보면 아무래도 업무의 연장선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영국인 파트너는 십대부터 쳤던 드럼 스틱을 내려놨다. 밴드 활동도 중단했다. 공연 업무를 전문으로 한다는 이유로 밴드의 크고 작은 공연 기획이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된 탓이다. 취미였던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프로페셔널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도 한몫했다. 말 그대로 더는 취미로 삼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을 볼 상황과 기회는 더욱 늘었다. 콘서트 동향을 살피고 관심있는 음악가를 보기 위해서라도 공연장을 찾는다. 하지만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그 공연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점검하게 된다. 음향과 무대, 악기의 스펙과 예상 금액, 무대 효과와 무대 장치가 있는지, 경호의 배치와 관객의 규모를 훑는 작업은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관객들은 공연을 어떻게 느끼고 볼지, 이 공연의 장단은 무엇인지 수집하고 분석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 정도면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 공연장을 가는 셈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이를 순수하게 즐기기 어려워진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덕질에서 직업으로 즐거움의 형태 변화

그렇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법이라고 했다. 공연장이나 페스티벌에서 전만큼 공연을 즐길 수 없게 됐지만, 대신 새로운 것들이 들어왔다. 무대 아래 관객으로서 맛볼 수 있는 감정과 달리, 이제는 무대 뒤의 혼돈과 성취감, 그 빛나는 순간들의 매력을 알고 있다. 멋진 국내외 음악가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라이브를 감상하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은 이 일이 주는 특별한 보상이다. 공연 기획자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티켓 한 장이 아닌, 관객이 그날 얻어가는 감정과 기억의 총체다. 이제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그 순간을 최상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듯 음악적 경험과 의미가 이전과 다르게 바뀌었지만, 이는 상실이 아닌 단지 변화일 뿐이다.

취미를 취미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좀 더 발현시켜 삶과 노동의 영역으로 끌어올지는 선택의 문제다. 이른바 ‘덕업일치’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동기부여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끈기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삶이 더 행복한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저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가능하다면 일을 더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 그 하나가 아닐까.

‘노동요’ 플레이리스트 추천

실제 노는 것과 노동의 사이에는 엄연한 간극이 있지만 음악의 힘을 빌면 일의 능률을 높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당신의 ‘노동의 순간’을 끌어올릴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해 본다. 일에 대한 주의와 집중력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도록 편안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업비트의 에너지를 주는 곡을 선별했다.

일렉트로니카의 철옹성 듀오 The Chemical Brothers의 ‘No need’으로 시작한다. 나름대로 노동의 테마를 적용해 보았는데, 뮤직비디오에 노동의 애환을 담아낸 Avicii의 ‘Levels’와 ‘Every Day Is Exactly The Same(모든 날이 정확하게 똑같아)’와 월요병 ‘Blue Monday 88(우울한 월요일 88)’ 같은 곡들이 그렇다. K-직장인들의 애환과 희망이 반복되다 휴가 기분 또는 퇴근의 달뜸 같은 감정을 끝에 배치하는 전개다. 카라와 오마이걸의 극복 파이팅은 Doja Cat의 ‘Boss B*tch’로 이어지며, 일 끝나고 놀 생각에 신나는 Sia의 ‘Cheap Thrills’으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노동을 응원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플레이리스트 듣기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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