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18년간 은행·카드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한 김현주(45)씨는 만성 방광염에 시달리고 있다. 8년 전 발병한 뒤로 지금까지도 약을 달고 산다. 한 조에 10명씩 근무하는데 동시에 3명 이상 화장실을 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응답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실적 미달이 누적되면 용역업체와 원청 간 계약해지 요건이 된다. 김씨 같은 상담사들은 콜수 압박과 고용불안으로 인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참으면서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

콜센터 상담사 10명 중 3명은 방광염으로 치료를 받거나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15.4%는 업무 중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는 등 여유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노총은 2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24일부터 5월29일까지 서울·경기·인천·대전·부산·광주 등 콜센터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618명을 포함해 총 1천278명이 응답했다.

콜센터 노동자 대부분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5%가 계약직이었고, 10명 중 7명 이상(74.4%)이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 소득은 220만6천원(세금 및 4대보험 공제 후)으로 최저임금(201만580원)과 불과 20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응답자 성별은 여성이 93%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근골격계질환이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은 목·어깨·팔·손가락 통증(69.7%)이나 만성피로(67.5%)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방광염이나 여성질환을 겪었다는 응답자도 각각 31.9%, 36.4%나 됐다. 우울·불안장애 같은 정신과 질환을 호소한 경우도 31%나 됐다.

휴게시간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하루에 쉬는 시간을 물어보니 10명 중 1명(11.5%)은 ‘30분 미만’이라고 답했다. 업무 중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는 등 여유시간 이용과 관련해서도 ‘매우 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36.4%에 그쳤다. ‘별로 가능하지 않다’거나 ‘전혀 불가능하다’고 답한 경우는 15.4%나 됐다.

설문조사를 분석한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방광염이나 정실진환의 경우 건강보험통계상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과 비교했을 때 10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화장실을 자주 갈 수 없는 등 휴게시간이 부족하거나, 직무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는 등 생리·필수 여유를 둘 것을 규정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현장에서 여유시간이 온전히 보장된다고 답한 경우는 36%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