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사기와 역전세 피해 현장에서 정부를 대신해 공공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노동자들이다. 최근 잇따라 전세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공사 노동자들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졌다. 그런데 공사 노동자들은 일할수록 박탈감만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전세사기 피해자 보증금 대신 내 '적자'

25일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공사 직원들은 이번달 성과급을 도로 반납했다. 공사가 지난달 기획재정부의 202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미흡(D)’ 등급을 받은 데 따른 조치다. 공사는 지난해 1천25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크게 늘면서 집주인 대신 공사가 전세금을 지급해 경영이 악화됐다. 현장에서 “일할수록 평가가 안 좋아진다”는 불만이 커지는 이유다.

공공성보다 경영효율성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는 이번 경영평가부터 재무성과 평가 비중을 10점에서 20점으로 두 배 높였다. 기재부는 지난달 공사의 낮은 경영평가 이유로 ‘당기순손실 확대’를 지목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는 공공기관 역할에 충실한 결과 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공사의 주요 업무는 전세금 반환보증을 서는 것이다. 주채무자인 집주인과 보증채권자인 세입자 사이에서 공사는 보증채무자가 된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보증 사고가 발생하면, 공사는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갚아준다. 이를 대위변제금이라고 한다. 지난해 대위변제금은 9천241억으로 2021년(5천40억)보다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상환한 액수는 2천179억원에 그쳤다.

전세사기 보증사고 1년 새 2배 급증
올해 2천700억 손실 예상

전세사기와 역전세 영향으로 업무량은 급격히 늘었다. 전세금 보증서 발급 자체는 큰일이 아니다. 문제는 보증사고가 발생했을 때다. 세입자의 전세금 반환 이행청구를 받아서 전세계약이 정당한지, 공사가 세입자에게 양수받은 권리에 문제가 없는지 등 대위변제 심사를 해야 한다. 집주인에 대한 재산조사와 경매를 통해 대위변제금를 회수해야 한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금 보증서 발급은 23만7천797건으로 2021년(23만2천150건)와 비슷하다. 하지만 보증사고가 2021년 2천799건에서 지난해 5천44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대위변제도 2021년 2천475세대에서 4천296세대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발급량 자체도 많아졌다. 상반기 기준 지난해 발급량의 3분의 2를 넘어섰다. 보증사고와 대위변제는 지난해를 훌쩍 넘어 각 8천156건, 5천991세대다.

20년 넘게 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연우(가명)씨는 “1997년 IMF 사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가장 힘들다”며 “최근 일이 힘들다고 퇴사하는 직원들이 부쩍 늘고 있다. 다들 지옥생활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기재부가 80명 증원을 통보했지만 신규 채용이라 언제 인력이 투입될지 알 수 없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보증금 수익을 쌓을 때보다 대위변제할 때 더 힘들다”며 “모순된 경영평가가 계속된다면 전세금 보증서도 발급해주지 않고 수익만 나는 사업을 하면 된다. 그게 무슨 공기업이냐”고 따졌다.

올해 경영상황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대위변제금은 이미 1조3천349억에 달한다. 올 초 공사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2천700억 가량의 손실이 예상되기도 했다. 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결산 기준이라서 실현된 내용이 많이 추가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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