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보건공단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배포하고 있는 안내 동영상. 성별을 이유로 비하하는 등의 행위를 직장내 괴롭힘 유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동영상 갈무리>

“남자 직원이면 가만두지 않았다.”

“집안일이 중요하냐, 회사 일이 중요하냐. 회사 일이 중요하지.”

안전보건공단 지역본부장이 소속 부하직원에게 한 말이다.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공단의 한 지역본부에서 일하는 A씨는 해당 지역본부장 B씨와 공단 이사장을 상대로 지난 21일 근로기준법 위반(직장내 괴롭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직장내 괴롭힘 발생 사건에 대한 후속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근기법 위반 행위를 시정해 달라는 취지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감정노동·직무스트레스 예방 업무 등을 하는 기관인 공단이 내부에서 발생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 진정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진정서에 따르면 A씨는 B씨에게 대면보고를 수시로 하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 1월 부임한 본부장은 3월께부터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A씨에게 했다. 공단 본부에서 내려온 인사문제와 관련한 처리 방침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B씨는 “기관장이 이런 것도 마음대로 조정 못하냐”라고 소리쳤다. 공단 본부 방침이 아니라 B씨 지시를 이행하라는 취지다. 해당 사건이 있은 바로 다음 날 A씨가 ‘직원 업무분장은 당사자와 협의해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하자 B씨는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얘기하냐. 남자 직원이면 가만두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4월 초에는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너 때문에 조직이 흔들린다”는 말을 시작으로 30분간 폭언을 했다. 5월 말께는 “휴가를 쓸 거면 미리 와서 죄송하지만 어떤 사유로 휴가를 써야 한다고 얘기를 하고 가야지, 그냥 휴가를 내면 안 된다”며 승인 후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도 힐난했다. B씨의 괴롭힘을 견딜 수 없었던 A씨는 지난달 초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담당의사 조언에 따라 6월12일 공단에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공단은 내부 지침에 따라 지난달 28일 직장내 괴롭힘 심의위원회를 소집해 해당 사건을 다뤘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공단에서 열린 첫 괴롭힘 심의위다. 사측 4명, 노측 3명 등 7명이 위원으로 참여한 심의위는 B씨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안전보건공단노조가 확인한 괴롭힘 심의위 회의록을 보면 사측 위원은 “권고안을 먼저 정한 뒤에 그 수위에 따라 괴롭힘 여부를 논하면 어떻겠냐”는 등의 말을 하며 B씨를 감쌌다. 징계 수위를 결론 내고, 해당 징계에 맞춰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자는 취지다. 사측 추천 위원은 “괴롭힘으로 인정해도 꼭 징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괴롭힘 심의위는 ‘직장내 괴롭힘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행위임은 인정돼 경고처분 및 교육처분을 권고한다’고 결론 내렸다.

공단의 이 같은 처분은 공단 윤리강령은 물론 직장내 괴롭힘 예방을 위해 공단이 제시하는 매뉴얼과도 어긋난다. 공단 윤리강령에는 “임직원은 불손한 행동이나 다른 임직원을 비방하는 등의 괴롭힘을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공단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배포하고 있는 매뉴얼에도 위압적 태도, 무리한 업무지시, 성별을 이유로 비하하는 젠더 괴롭힘 등을 괴롭힘 유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A씨는 진정에서 자신이 겪은 일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고 유사한 일이 공단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A씨와 B씨는 업무·근무장소 분리가 되지 않고 있다. 병가를 사용 중인 A씨는 조만간 업무에 복귀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공단 관계자는 “본인(A씨)은 본부장 전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괴롭힘 심의위에서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한 상황이고, 공단도 기관운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며 “이후에 계속 상황을 점검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조처하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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