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달 때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 속에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를 하던 29세의 젊은 노동자가 일하다 쓰러져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그의 사인이 ‘폐색전증’이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의아했다. 한편으로는 업무와 연관시키기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폐색전증은 몸 어딘가에서 발생한 혈전(피떡)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폐동맥을 막아 생기는 질병이다. 폐동맥은 온몸에서 혈액을 받아 폐로 보내 산소를 공급받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에 폐동맥이 막히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결국 폐색전증의 시작은 몸 어딘가에서 혈전이 생겼다는 것이다. 건강한 상태의 몸속에서는 혈액이 시원하게 잘 돌고 있어 피가 굳어 혈전이 생기는 일도 드물다. 생기더라도 금방 다시 풀어져서 큰 문제를 잘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혈류가 느려지거나 정체된 경우 혈전이 생길 위험이 높아지는데, 흔한 경우가 큰 수술을 받고 장기간 누워있거나 어떤 이유로 인해 고정된 자세로 오래 있을 때다.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 주의하라고 하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바로 좁고 불편한 좌석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심부정맥 혈전증’에 붙여진 별명이다. 이 청년의 업무는 쇼핑카트 정리였으니 계속 움직이는 일이지 가만히 앉아있는 일은 아닐 테니 업무와 연관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노동조합과 유가족이 공개한 그의 업무량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망 이틀 전 토요일 1시간 연장근로해 총 9시간 동안 26.4킬로미터 도보(약 4만4천 걸음), 사망 전일 일요일 22킬로미터 도보(약 3만7천 걸음), 사망 당일 쓰러질 때까지 약 7시간 동안 17.4킬로미터 도보(약 2만9천 걸음). 게다가 이는 최고 기온 32~35도의 폭염 날씨에 엄청나게 무거운 대형 쇼핑카트를 20여개까지 한꺼번에 밀고 다니면서 측정된 거리다. 아무리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도 배겨 내기 어려운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3시간 근무 후 겨우 15분 주어진 휴식시간은 지친 몸을 쉬기에도 짧은데 왕복 10분 거리 휴게실에 가서 물을 마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몸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운 날씨에는 땀을 배출시켜 몸을 식힌다. 운동이나 육체노동을 하면서 몸의 근육을 움직이면 체온이 더욱 심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더 많은 땀을 배출해야 한다. 적절한 수분 공급을 제때에 하지 못하면 몸의 수분이 부족해진다. 인체 수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혈액은 끈적해지고 결국 덩어리져 혈전이 생기기 쉬운 상태가 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심하게 많이 움직이며 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쉬면서 수분 보충을 할 수 있었더라면, 가슴 아픈 일을 생기지 않았을 수 있는 것이다. 과한 노동으로 인한 죽음, ‘과로사’가 딱 들어맞는 사연이다.

노동강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에서 결정적인 요인이다. 온·습도, 풍속 등 외부환경이 기본이 되지만 작업의 강도와 휴식시간 비율이 고온작업의 노출기준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이유다. 쉽게 예상 가능하지만 작업의 강도가 높을수록, 휴식시간 비율이 낮을수록 법적으로 허용되는 고온작업의 온도는 더 낮아진다. 다른 말로 하면 기술적으로 온도를 더 낮추지 못하겠으면 작업의 강도를 낮추고 휴식시간을 늘려서 관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 맞추겠다고 특별한 온도계로 온도 재고 복잡한 식을 사용해 습구흑구온도를 계산하고, 또 복잡한 표에서 작업강도와 휴식시간 비율 찾아서 고온 기준에 맞는지 평가하는 일이 과연 효과적일까? 또 그 허용 기준에만 맞으면 다 괜찮은가?

훨씬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어떤 노동조건이면 편안하게 일할 수 있을지 노동자에게 물어보자. 이를 기준으로 환경을 바꾸고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느끼면 언제든지 쉽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수백 킬로그램의 쇼핑카트를 밀고 당기면서 하루에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노동은 설사 바깥 기온이 쾌적한 봄·가을이라도 안전한 노동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폭우에 이어 폭염이 몰려오는 시기다.

안타까운 생명을 되살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다시는 이런 혹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동료가 없도록 작업장의 변화를 이뤄 내는 게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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