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한 공공병원이 위기다. 코로나 환자 치료에 전념하면서 내보낸 일반 환자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영악화로 임금이 밀리고 인력은 떠나는데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노동자들은 묻는다. ‘코로나에 맞서 싸운 대가가 이건가?’ <편집자>
 

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
▲ 안수경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마다 위·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원과 간호사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병원들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코로나19 환자들만 입원하고 치료하도록 지시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상위 수준인 병상과 질 좋은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민간병원 위주로 의료체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의료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중환자를 위한 병상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민간병원에 강제적인 행정명령까지 지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은 3년 넘게 모든 일반환자를 내보내고 코로나 환자만 입원시켜 치료하면서 감염병과 맞서 싸워 왔다.

지난해부터는 병원에서 일반환자를 받으면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진료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전담병원 상황에서 온 힘을 다해 피땀을 흘렸던 우리 노동자들은 이제 적자와 상처만 남은 절망적인 일터에서 떠나야 하는지,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괴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입사할 때 가슴에 품었던 국가중앙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신종플루·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국립중앙의료원은 감염병 대응의 컨트롤타워로 중추적 역할을 해 왔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참담하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도심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병상 규모를 더 축소해서 신축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더욱 기가 막힌다. 병상 가동률이 낮고 수익률이 좋지 않으니 병상을 더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환자만 3년 이상 전담해 치료하면서 생긴 낮은 가동률이 의료원의 잘못이고, 우리 노동자들의 잘못인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국가가 나서서 건강 안전망을 구축하고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공정책을 강화·확대하기를 염원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7월 누구나 알만한 서울 소재 대형병원에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병원 안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개두술을 할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또 지난달에는 고열에 시달리던 다섯 살 어린이가 입원할 병원을 찾아 헤매다 입원조차 하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의료서비스 질과 많은 병상을 갖고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망”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필수의료 분야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필수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다.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중심 의료체계에서는 국가적 재난·재해, 응급상황과 필수 의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현재 의료 수요가 적은 지역과 저수익 진료과목을 점차 기피하면서 필수의료 공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병원을 찾아 거주지가 아닌 먼 타지로 ‘원정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일은 이제 끝내야 한다. 주먹구구식 임시방편 정책은 의료체계의 쏠림현상과 왜곡을 바로잡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의료 강화와 필수의료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절실하다. 생명의 가치는 경제 논리나 혹은 시장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공공의료 확충, 필수의료서비스 체계 구축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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