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3. 6. 9. 선고 2017도9835 판결

1.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오래된 사건이다. 우선 이 사건 공소사실은 2014년의 일이니 시간상으로 오래됐다. 상고한 시기가 2017년이니 상고심 계류 기간도 오래됐다. 또한 이 사건에 선행해 비슷한 쟁점으로 진행됐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에 대한 업무방해방조 등 사건의 공소사실이 2010년의 일이니 이 점에서도 오래됐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노조활동에 대해 업무방해로 기소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업무방해의 ‘방조죄’를 동원해 범죄화하려는 바로 그 생각이 특히 오래됐다.

1심과 원심이 공소사실에 대해 방조의 법리를 관행적으로 적용해 유죄로 판단한 것과 대조적으로 대법원은 (1) 노동3권의 실현에 있어 제3자 조력의 중요성 (2) 조력하는 제3자의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래에서 항목별로 살펴본다.

2. 공소사실의 요지

가. 정범 사건

이 사건의 배경에는 한국철도공사의 이른바 ‘순환전보’ 실시가 있었다. 공사는 2014년 3월 이례적으로 7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순환전보를 실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 철도노조는 인력 부족 상황에 대한 고려 부재와 이에 따른 위험 증대, 이른바 보복전보 논란을 부른 선발의 객관성 부재, 절차상 하자 등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전보대상자로 선정돼 근무지가 이전된 조○○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전 철도노조 간부들이었던 이○○, 유○○(이 사건의 공소사실인 방조 행위와의 관계에 있어 정범들)은 다른 동료 조합원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은 채 새벽에 공사 서울차량사업소 조명탑에 올라 순환전보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은 약 3주가량 진행됐고, 위 정범들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와 건조물침입의 유죄가 확정됐다.

나. 본 사건

피고인들은 위 정범들의 동료 노동자이자 같은 철도노조 소속 간부들이다. 피고인들은 정범들이 새벽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순환전보 철회를 위해 조명탑 농성을 시작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후 조명탑 아래 천막을 설치하고 정범들이 내려올 때까지 지지 집회 개최, 음식물·책 등 필요 물품 제공 등의 행위를 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행위에 대해 정범들의 업무방해 등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방조로 기소했다.(당초 경찰과 검찰은 업무방해죄 및 퇴거불응죄의 기소도 검토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업무방해방조로만 기소했다.)

3. 1심 및 원심의 판단

1심은 피고인들이 위와 같이 집회를 개최하고 정범들에게 물건을 전달해 준 것은 정범들의 위법행위를 용이하게 하거나 결의를 강화해 이를 방조한 것이라고 보았다. 유죄의 근거로 △피고인들과 정범들의 행위 목적이 순환전보 반대로 동일했던 점 △피고인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집회를 개최한 장소는 조명탑 바로 아래로서 정범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인 점 △비록 피고인들이 물품을 올려준 것에 인도적 목적이 함께 있었다 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 점을 설시했다. 피고인들은 항소했고, 원심은 항소이유 중 양형부당의 점을 인정해 1심을 파기했으나, 공소사실에 대한 유죄 판단은 유지했다.

4. 상고심의 판단

가. 상고이유의 요지

피고인들은 상고이유로 주로 다음을 주장했다.(**각주*1))

(1) 원심에는 방조죄의 구성요건에 대한 법리오해가 존재한다. 즉, 인과관계와 관련해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거나 기회를 증대시킨 것이어야 하는데 정범들은 피고인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이미 순환전보 반대를 위해 조명탑 농성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또한 이중의 고의, 즉 정범의 고의와 방조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을 넘어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범들의 행위와 독립적으로 보았을 때) 정당한 조합활동에 해당할 여지가 높고, 전달한 물품들도 정범들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것으로서 공사 직원들과 경찰의 검사를 거쳤는바, 이러한 중립적·불가벌적 행위를 방조죄로 의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이미 폐지된 구 노조법상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의 부활과 다름없는 결과가 야기될 수 있다. (2)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부(成否)는 기본권 보장의 원칙에 따라 엄격히 판단돼야 하고, 방조가 인정되려면 정범들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만 한다. (3) 가사 피고인들에게 방조죄의 구성요건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정당한 조합활동으로서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존재한다.

나. 상고심 판단의 요지

피고인들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면서 원심을 파기했다. (1) 관련 법리로서, 정범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으로 기여하지 않고 단지 밀접한 관련이 없는 행위를 도와준 것에 그친 경우에는 방조가 성립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또한 헌법상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이에 조력하는 제3자도 표현의 자유나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보유하므로 그러한 기본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방조의 성립 범위를 신중히 판단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2) 나아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에 관해 정범들은 피고인들과 무관하게 조명탑 농성을 계획하고 실행한 점, 피고인들의 천막 설치 및 집회 개최는 표현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 단결권의 보호 영역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정범들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들이 정범들에게 음식과 물건을 전달한 것은 그 생존과 안전을 위한 것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범들의 행위와의 관계에서 방조범의 성립에 이를 정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5. 판결의 의의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 2년여 전에 최병승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각주*2))이 있었다.

해당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업무방해방조에 대한 신중한 판단의 필요성을 설시했는데, 다만 최병승씨의 공소사실 중 집회 참가 행위와 공문 전달 행위에 대해서만 방조를 부정하고 농성현장에서 독려한 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했다. 반면 본 사안에서는 위 사건에서 설시한 법리를 반복하면서도 위 사건에서는 방조로 인정했던 것과 유사한 행위태양(근접한 거리에서 지지 발언, 집회 등 행위)에 대해서 방조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한결 엄격하게 사안을 포섭한 의의가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행위의 내용과 방향이 정범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방조라고 보지 않고 그 행위가 정범들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했는지를 판단했다. 이때 피고인들의 기본권의 보호 영역을 고려했다. 방조죄를 폭넓게 인정하면 조력자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노동 3권이 터 잡은 단결과 연대 그리고 제3자의 조력에 열려 있는 규범을 고려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방조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판단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정범들에게 전해준 물자의 내용은 매일, 시간대별로 공사와 경찰이 검사해 기록을 남겨 두었는바,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식사, 좌변기, 소변통, 위생용품, 도시락, 음료수, 떡, 물, 물티슈, 연습장, 볼펜, 안약, 책, 빵, 신문, 세탁물.’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 인간으로서의 존엄 유지를 위한 것들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춰 피고인들의 물품 전달 등 행위는 정범들의 생존과 안전 유지, 안위 확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판시했다.(쌍용자동차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의 장기간의 농성과 같이 행위자의 건강이 우려될 만한 사안에 있어서는 그 문제 되는 행위의 법적 정당성 여부는 별론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음식과 물, 의약품과 의약서비스 등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과 같은 대법원의 판시는 지극히 타당하며, 헌법정신과 노동 3권의 보장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선배이자 동료인 정범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했다는 이유로 기소됐고, 9년 만에야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최병승씨 사건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업무방해방조’라는 죄명이 모두에게 낯설어 회자됐던 때를 기억한다. 그것이 특히 노동 3권의 세계에서 그렇게 쉬이 휘둘러져서는 안 될 죄명임을 재차 확인받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각주

1) 유사한 취지의 상세한 논의로는 박지현, “쟁의권 행사에 대한 지지·지원행위의 업무방해방조죄 처벌의 문제점”, 민주법학 제65호,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17 참조.

2)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5도12632 판결. 이 사건의 원심(부산고등법원 2015. 7. 22. 선고 2014노781 판결)에 대한 비판으로는 박지현, 앞의 글 및 최용근, “노동자 점거 농성 지지 업무방해방조 유죄 판결·업무방해로 박제된 노동 3권의 현주소”,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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